/박병철 전북농협 노조위원장
/박병철 전북농협 노조위원장

엊그제 필자가 몸담고 있는 농협 전북본부에서는 튀르키예 난민 구호물품 전달식이 있었다. 점퍼, 셔츠 등 각종 의류와 생활용품 등을 전 직원이 동참해서 기부하는 행사였다. 우리 노동조합에서도 마스크 2,000장과 담요 50장 등을 내 놓았다. 상상할 수도 없는 지진 피해를 입고 커다란 상심에 빠진 튀르키예 이재민들에게 조그마한 힘이라도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은 행사여서 의미가 컸다.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아시다시피 지난 6일 오전 4시 16분 규모 7.8, 오전 10시 24분 규모 7.5 강진이 튀르키예 동남부를 연이어 강타한 결과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지금까지 파악된 사망자는 4만 8,000명을 넘어섰다.

며칠 전 한 지상파 방송에서는 튀르키예 현장에서 취재한 내용의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이 재난은 범죄다.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 “신이시여! 왜 못 찾으시나요. 나의 아들을!”이라며 절규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쉬이 잊혀 지지 않는다. 흡사 비행기 폭격을 맞은 것처럼 무너진 건물들과 커다란 무덤처럼 쌓인 잔해, 26만여 채 건물의 붕괴로 도시는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렸다. 무너진 건물 사이에서 삶을 영위해야 하는 1,350만명 이재민의 삶도 위태롭다. 전기와 수도가 끊기면서 암흑 속에서, 길가에 고인 물을 마시며 생활하고 있어 콜레라 등 전염병도 우려된다고 한다. 

잠자다가 한 순간에 소중한 가족을 잃은 생존자들은 정부의 부실 대응을 강하게 질타한다. 정부는 지진 발생 후 35시간이 지나서야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군대를 투입해서 구조 작업을 시작했다. 가족과 동료가 무너진 건물 더미 속에 뻔히 갇혀 있는 것을 알면서도 50시간 이상이나 방치되고, 구조대가 늦게 오는 바람에 결국 생명을 잃어 버렸다. 20년을 집권하고 오는 5월에 대선에 출마할 예정인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 정도의 거대한 재난에 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도대체 튀르키예는 어쩌다가 죽음의 땅이 되어 버렸을까. 여러 개의 지각 판이 충돌하는 지점인 튀르키예는 오래 전부터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으로서, 1999년에도 강진으로 인해 17,000여명이 사망했다. 이후 건축 규제를 일본과 비슷한 수준으로 엄격하게 적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서상으로는 엄격하게 적용할 것을 명시하면서도 실제 적용에 있어서는 불법이 난무하면서 무수한 부실공사를 양산했다. 특히 내진 설계를 하지 않아도 건축 허가를 내 주는 특별 건축물 사면이 이루어졌고, 작년 10월에도 유사 법안이 국회에 회부되었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20년 넘게 지진세를 걷어 왔는데, 그 돈(약 6조원)이 어디에 어떻게 쓰인지도 모른다니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반면에 사망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에르진’이라는 도시가 주목받고 있다. 에르진은 1차 진앙지에서 100km 가량 떨어진 도시로 지진의 영향권에 있었으나, 무너진 건물도 전혀 없었으며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분지보다 높은 지리적 이점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건물 높이를 6m로 제한하고, 외케슈 엘마솔루 시장은 모든 건물의 건축과 관리를 법규와 규제에 따라 정확히 시행했으며 불법건축은 한 건도 허용하지 않았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튀르키예 지진 같은 대형 참사가 만약 한반도에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밤에 잠을 자다가 한 순간에 나를 비롯한 소중한 가족들이 목숨을 잃고, 모든 것이 사라진다면 과연 어떨까. 감히 상상조차하기 싫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도 이제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한다. 지난 2022년 ‘지진연보’에 따르면 지난 해 한반도에서 발생한 규모 2.0 이상의 지진은 77회로 전년대비 10% 증가했으며 계속 증가추세에 있다. 그런데 서울의 경우 내진 설계가 된 건물은 대상 건물의 23.8%에 그친다고 한다. 대한민국이 ‘형제의 나라’라고 일컫는 튀르키예를 두고 타산지석이라는 말을 쓸 수는 없겠지만 일상 속에서 발생하는 사고들이 천재(天災)인지 인재(人災)인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또한 건설물 안전법 등 법규의 정비와 날림 공사의 발본색원 등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과제다. 

복구에 한 세대 이상의 세월이 필요하고 100조원 이상의 돈이 들어간다는 오늘의 튀르키예. 가족과 동료를 잃은 1,350만명의 이재민에게 무엇이 필요할 것인지 우리나라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더욱 적극적인 구호 활동이 절실하다. 또한 우리 국민들도 이번 튀르키예 재난을 단순히 먼 나라 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행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졌으면 한다.

/박병철 전북농협 노조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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