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입니다만 처음 산 번역본은 일문학 전공자 것이 아니고, 그리 유명하지는 않은 청림출판사라는 곳에서 펴낸, <서기원>이라는 나름 쟁쟁한 경력을 가진 언론인, 정치인, 소설가의 다채로운 경력을 가진 이의 것이었습니다. 그는 서울대 상대를 나와 조선일보에서 언론인을 하다 청와대 대변인도 했을 겁니다. 불교도였기에 불교 부분의 번역이 정확했습니다. <남전보원(南泉普願)> 선사와 <조주종심> 선사 사이에 있었던, 고양이 목을 베는 '남전참묘(南泉斬猫)' 공안(公案)을 정확하게 번역했습니다.

이번에 새로 사서 다시 읽은, 웅진지식하우스에서 펴낸 책은 <허호>라는 일문학 전공자가 번역했습니다. <미시마 유키오>를 연구해서인지 번역문이 더욱 美麗하였습니다. 다만 선불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지 '남전(南泉)'을 그대로 '남천'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즉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을 그대로 '남무아미타불'로 읽는 것과 같은 것이죠. 조금만 禪佛敎에 대해 알아도 이 공안은 거의 경전 대접을 받는 話頭일 텐데요. 이 실수 외엔 문장은 훨씬 예쁩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언론인이자 소설가이던 <서기원>님의 번역은 미적 감각보다는 더욱 의미에 파고들어 매우 간결합니다. 저로선 어느 번역이 더 좋은 지 선악을 모르겠습니다. 괜히 두 가지 번역본을 읽은 기분입니다. <미시마 유키오>가 말하고 싶었던 본질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으로는 <서기원>님 것이 나은 것 같군요.

서른 즈음에 처음 읽었습니다. 좋게 보려고한 측면은 전혀 없지만 이처럼 격렬하고 기괴한 성장 소설이 당시의 제 정서엔 그럭저럭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만 주인공이 '금각사'를 불태우는 행위가 행위 자체에 그칠 뿐, 주인공의 정서나 인격에 조금의 구체적인 성장도 없었기에 행위 자체를 즐긴다는 이외엔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명색이 성장소설인데 성장은 없고 불태우는 행위가 배변 행위나 성적 배설 행위로 밖엔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소설, 그것도 성장 소설을 오랜 시간을 두고 두 번이나 읽고 평가를 하는 일은 힘이 들었습니다. 서른 즈음에는 충분히 납득이 가던 주인공의 행위가 나이가 들어 읽으니 거의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문학 평론가들은 젊은 정신으로 살아야하나 봅니다.

  

<미시마 유키오>를 천재로 보는 많은 시각이 있지만 제 개인적인 평가로는 그 근처에도 못 가는 수준으로 여깁니다. 일본인 특유의 과장으로 봅니다.  예쁜 소녀애 얼굴 하나에 '천 년에 한 번 나올 미모'라고 뻥을 치잖습니까.

 혹시 <미시마 유키오>를 천재로 여기시는 분이 계시면 같은 성장 소설이라도 <토마스만>의 [토니오 크뢰거]나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읽고도 같은 생각이 드시는 지 묻고 싶습니다. 제가 매우 경멸하는 작가인 <이문열>도 [젊은 날의 초상]의 수준은 높습니다.

수재 정도입니다. 수재도 문호가 될 수 있지만 별로 노력한다는 느낌이 없습니다. [금각사]를 탈고할 때의 나이가 31세인데 당시는 전업작가 상태라 독서나 사색의 깊이가 깊어지는 시기인데요. 다시 읽으니, 물론 사춘기 소년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작가 역시 아직 사춘기 수준의 정신 세계에 머물러 있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어느 측면에선 젊은 정신일수록 좋지만 어릴수록 통찰력의 부족을 피할 수 없습니다. 객관화에 힘이 부치죠.

<미시마 유키오>가 본격적으로 천황숭배로 돌아서기 시작했다는, 1936년 2월 26일 소장파 쿠데타에 대한 내용의 [우국]이나 자살하기 직전의 [풍요의 바다]는 아직 한글판이 없습니다. 제 수준엔 일본 원서를 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천황숭배로 빠져드는 단초를 [금각사]에서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작가들의 사상은 거의 일관성을 보이므로 비록 50년대에 쓰인 책일지라도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쿄토 여행에서 당연히 '금각사'를 다녀왔습니다. 당시 추석 연휴였는데 자유 여행을 좋아해서 얼마든지 긴 시간을 두고 관람할 수 있었고, 안에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1층은 활짝 열어 놓아서 멀리서도 대략의 구조는 볼 수 있었습니다. 주변도 일본 특유의 정원의 아름다움을 잘 살려서, 잘 키운 특유의 이끼들이 도왔습니다. 고색창연한 것이 아니라 되려 숨 막히도록 화려하게 盛裝한 美姬의 느낌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1950년에 불타서 재건하였고 관리도 잘 되어 방금 새로 지은 것 같았습니다. 소설에서 보이던 500여년 된 고풍스러운 모습이 전혀 없어서 최신식 백화점 쇼윈도 같았습니다. 소설에서는 세월의 여파로 어느 정도 금박이 벗겨진 상태로 등장하는 꼭대기의 금동봉황도 모두 금빛찬란하여 새것 자체였습니다. <계속>

/박정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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