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문 법학박사·민주정책개발원장
/이로문 법학박사·민주정책개발원장

정부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와 그 유가족에게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민간의 자발적 기부금으로 재원을 마련해 소위 ‘제3자 변제 방식’으로 일제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도다.

이러한 정부의 해법에 대해 일본의 사과가 우선이고 일본이 배상해야 하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여론이 거의 60%에 달한다.

최근에는 서울대학교 민주화교수협의회에서 제3자 변제 방식은 진정한 해법이 될 수 없다며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

가해자인 일본이 배상은커녕 사과조차 할 생각이 전혀 없는데 정부가 나서 일본의 사과를 대신하고 배상까지 하려는 모양새다.

한일관계를 풀기 위한 해법이 피해자의 가슴을 찢어지게 하고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는 방법밖에 없었을까?

국민정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법적 검토는 제대로 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정부가 내놓은 제3자 변제 방식은 무효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고 무효가 되면 피해자는 2차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민법 제469조 제1항에 따르면 채무자가 아닌 제3자도 원칙적으로 채무자의 채무를 대신 변제할 수 있다.

제3자가 변제하더라도 채권자에게 불이익이 없기 때문에 변제의 주체를 채무자에게만 국한시키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제3자 변제 방식에 의한 판결금 및 지연이자의 지급은 민법상 무효로 될 가능성이 높다.

제3자도 원칙적으로 채무를 변제할 수 있지만 민법 제469조 제2항에서는 “이해관계 없는 제3자는 채무자의 의사에 반하여 변제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해관계가 없으면 채무자인 일본의 동의가 있어야만 판결에 따른 변제가 유효하다.

여기에서의 이해관계는 ‘법률상 이해관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사실상 이해관계 또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진 자는 변제할 자격이 없다.

이해관계 있는 제3자의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다.

예를 들어 친구가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릴 때 자기 부동산에 저당권을 설정해준 사람이나 저당권이 설정된 부동산을 매수한 사람처럼 대법원은 그 범위를 좁게 인정한다(대판 2010.3.25.2009다29137).

이처럼 법률상 이해관계 없는 제3자가 채무자의 동의 없이 채무를 대신 변제할 수는 없다.

정부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에 대해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대신 변제할 수 있는 법률상 이해관계에 있는 제3자가 아니다.

따라서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변제를 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일본 정부는 동의한 바가 없다.

그렇다면 채무자인 일본 정부가 동의했다고 볼 수 있을까? 일본 정부는 잘못이 없으니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며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의 변제에 대해 묵시적으로라도 동의했다고 볼 수 없다.

결국 정부는 제469조 제2항의 이해관계 없는 제3자이고 일본의 동의도 없기 때문에 정부가 대신 변제를 하더라도 이 변제는 무효이고 일본의 변제 의무가 소멸되는 것도 아니다.

무효이기 때문에 피해자는 가해자인 일본을 상대로 피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정부는 제3자 변제가 유효하도록 일본의 동의를 얻었는지, 앞으로 얻으려 하는지 밝혀야 한다.

끝까지 굴욕적 외교를 계속하든지 아니면 무효를 인정해야 한다.

/이로문 법학박사·민주정책개발원장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