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에 서다
박연규
강가 갯버들 사이로
출렁이다 사라지는
점점이 새끼오리들
뜨거운 손 맞잡고 시냇물 건너
달빛 건너 별자리 속으로
숨어들던 그 날 밤,
벌거숭이 하늘이여
혹여 이 밤, 그대도
저 물결처럼
질긴 추억의 끈 움켜잡고 흘러 흘러
어디만큼 가고 있는지
눈부시도록 반짝이며 뒤척이며
마음의 무늬 지우다가 그리다가
새끼오리 한 마리가 끌고 가는
시간의 무늬여
박연규 시·사진집<바람처럼 바보처럼>((주)사진예술.2022)
글이 가진 힘은 대단하다. 시는 많지 않은 단어와 짧은 문장으로 무척 많은 것을 담아낸다. 반면 소설은 한 가지를 말하기 위해 수많은 과정을 만드느라 두꺼운 책이 된다. 시집은 시마다 새로운 이야기와 주제가 있다. 그래서 시와 잘 어울리는 타 장르는 그림이거나 사진이다. 그림과 사진은 한 장으로 많은 이야기를 담아두고 독자에게 상상을 선물한다.
어스름 저녁, 잔잔한 호수에 오리 한 마리가 물결을 남기며 강둑으로 간다. 오리가 남긴 물결은 호수 전체를 건드리고 인근에 선 채로 잠든 산도 흔들었다. 더 놀라운 것은 물가에 서성이던 키 큰 풀들과 나무들이다. 물안개 진한 고요한 세상을 흔들어 댄 것은 오리 한 마리 발길질이었다. 시간의 무늬가 태양에 전달되어지면 안개도 사라지고 찬란하게 빛나는 아침이 될 것이다. 시인은 강둑에서 저녁 시간의 색을 감상했다. 저녁을 닮은 외로움이었을 것이다. 오리 발을 닮은 그리움이었을 것이다.
외형적인 시는 형태만큼이나 어수선하다. 오리발은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움직이며 나아가듯이 시 속에서 풍경을 찾아야겠다. 오랜만에 시·사진집을 감상하였다.
-김현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