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진 학마을계획추진단장
/박영진 학마을계획추진단장

서학동은 학이 모인다.

풍수지리상 날개를 활짝 편 쌍학의 형상이 있는 마을이다.

그래서인지 학과 연이 있는 학산, 학봉리, 황학대, 백학루 등이 있으며 민초들의 오랜 삶과 같이한 세월의 흔적, 역사문화가 개발에서 소외되어 그런대로 원형을 유지한 채 찾은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은 학이 춤추던 서학동의 좁은목에서 정여립의 파쇼, 색장마을을 손잡고 찾아가면서 그들과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전주에서 남원 나가는 길목의 좁은목은 전주부성을 들어오는 유일한 길목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충경공 이정란 장군은 의병을 모아 좁은목이 빤히 바라보이는 대승사에 의병을 주둔케 하고 돌무더기를 쌓아 놓고 백병전을 준비한 것은 왜구들이 전주부성의 입성을 저지하는 최적의 요새요, 전주의 3대 바람통이다,

근래에는 전주시민들의 약수터로 유명했던 곳을 지나 고덕산 자락에 살며시 숨은 듯, 안긴 듯한 원당마을에 들어서자 주민들은 원댕이라면서 우리 원댕이는 칠성바위가 있어서 왜정시대에 젊은이가 징용을 아침에 끌려갔는디 저녁때 터벅터벅 걸어오길래 어째 돌아오느냐고 묻자 우리나라가 해방되어 징용 안가도 된 게 집으로 가라고 해서 왔다고 한 것, 6.25사변 때 빨갱이들이 옆 동네랑 난리를 치는데 우리 원댕이는 빨갱이들이 설치지를 않았지 왜 그렇을까 생각해 본 게 칠성바위가 우리동네를 지키고, 돌봐줘서 피해가 적은 걸로 알고 있지, 그런데 그 칠성바위(7개의 바위)가 집을 지으면서 하나 하나 없어지더니 인제 2개밖에 없어 하면서 아쉬워하시는 모습 뒤로하고 객사마을을 찾아 나섰다,

대성초등학교 담장을 따라 형성된 객사마을을 좀 더 확인하고자 주민에게 객사마을이 어디인가요 하자 잘못 오셨는데요,

객사는 시내에 있다는 말씀을 듣고 우리가 찾는 객사마을은 절사 절이 많이 있던 객사마을을 찾는다고 하자 모르겠다는 주민을 뒤로하고 객사 천을 따라 절의 흔적을 찾아 보았지만 나무와 수풀이 우거지고 덮어서 시기적으로 찾지 못하고 터벅터벅 걷는데 금방 무너질듯한 정미소가 깔끔하게 단장되어 길손들에게 차를 파는 곳으로 변신한 안적지소(한지를 만드는 곳)에서 한지공들이 흐르는 물에 한지를 뜨는 모습을 그려보며 이곳의 한지는 한지공들이 생산하면 판매에 대한 수수료만 공제하였다,

한지공들이 살았던 옆으로 길게 7~8개의 부엌 딸린 방 한 칸에서 식구들과 한지를 뜨며 생활하였던 정겨운 모습을 그려본다,

지금의 한지는 유럽에서 역사문화의 고문서 등 복원에 일본의 화지, 중국의 선지보다 우리의 한지가 질기고, 바람이 통하는 천년 한지로 복원하겠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좋아할까? 그래서 전주한지의 복원을 위한 전주천년한지관이흑석골에 문을 열었다.

정여립(1546~1589)은 당 시대 정치가요 혁명가를 찾아 정여립의 생가터 월암마을을 걸어가며 서슬파런 왕정시대에 천하공물론(천하는 공공의 물건)과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고 누구를 부린들 백성이 아니겠는가? 군주는 선출되어야 하며 아래로부터 백성을 위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한 혁명가였다,

전주, 금구, 진안 등에서 대동계를 조직하여 활 쏘고, 말타기도 하던 중 손죽도에 왜구가 침입하자 전주부윤 남언경이 정여립에게 왜구를 물리쳐 줄 것을 요청하자 쾌히 승낙하고 대동계를 이끌고 손죽도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전주로 오는 길목에 많은 백성들이 환호하고 따르는 자들이 늘어나자 역모를 꾀한다고 고변하여 정여립과 친분이 있는 인사 1,000여명에 달하는 무고한 희생자와 전라도가 반역향이라 찍힌 기축옥사(1589, 선조22년)발생은 조선 역사에 너무도 깊은 상처요 아픔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여립이 임진왜란 때에 살아있었다면 어떤 역할을 하였을까를 그려보며 은의 돌이 많다는 은석마을에 도착하자 돌담길에 옛 학독과 도고통들을 예쁘게 마을 어귀에 늘어놓아 찾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으며 돌을 주워서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은은 없는 것 같다,

아카시아집에 매운탕 먹으러 다니던 시절을 생각해 보며 색장마을로 향했다,

멀리 보이는 막은댐이제를 바라보며 어사 박문수가 넘어오면서 백성을 괴롭히고 재물을 빼앗아가는 탐관오리가 어디에 있는 부릅뜬 눈에 깜짝 놀랬다, 

색장은 왜구들이 마을로 들어오지 못하게 담을 높게 쌓고 허수아비를 세워 못된 왜구들을 마을로 들어오지 못하게 한 지혜로운 마을 입구에는 400여년 된 둥구나무가 방긋 웃어준다.

벽화가 예쁘고, 골목길이 살아있어 나도 모르게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각시바우에서 멱 감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전주천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오순도순 나누던 얘기꽃을 뒤로하면서 조선의 본향 전주의 역사문화가 온전하게 보존, 되길 기대한다.

/박영진 학마을계획추진단장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