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문 법학박사·민주정책개발원장
/이로문 법학박사·민주정책개발원장

윤석열 대통령은 4월 4일 국무회의에서 일정요건을 갖추면 쌀을 의무적으로 매수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의사를 밝혔다.

대통령은 헌법 제53조 제2항에 따라 국회에서 의결해 정부에 이송한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에는 15일 내에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하고, 그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이처럼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은 헌법이 인정한 대통령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에 거부권 행사 그 자체에 대해서는 비판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다만 국회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참석과 출석의원 2/3 찬성으로 재의결할 수 있다.

이처럼 헌법은 국회와 정부의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아무런 제한 없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일까?

헌법에는 법률안 거부권의 행사 이유에 대한 특별한 규정이 없다.

대통령은 법률안 이송을 받은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이의서’를 첨부하여 국회로 보내기만 하면 된다.

이처럼 법률안에 어떠한 문제가 있어야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는 규정이 전혀 없다보니 정부와 여당의 정책 방향에 부합하지 않아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실제 주로 이러한 경우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왔다.

하지만 정책방향과 맞지 않다고 하여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헌법상 거부권 부여 취지에 반하고 자칫 위헌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대통령이 정책적 판단으로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실질적으로 입법부인 국회의 권한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입법의 방향을 결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즉 거부권 남용에 해당한다.

따라서 헌법에 거부권 행사 이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더라도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를 위해서는 정당한 이유와 그 필요성이 있어야 한다.

어느 경우에 정당한 이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첫째, 법률안이 헌법에 위반되면 당연히 거부할 수 있다.

실체적 위반뿐만 아니라 절차적 위반도 포함된다.

둘째, 집행이 불가능해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법안이 시행되더라도 예산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에 도저히 집행할 수 없는 경우다.

셋째, 국가의 이익에 반하는 경우에도 가능하다.

이는 반드시 경제적 이익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행정부에 대한 부당한 정치적 압박이 있는 경우이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경우에는 위 사유 가운데 어디에 해당할까.

아무리 따져 봐도 맞아 떨어지는 게 하나도 없다.

거부권행사의 실질적인 이유는 정부와 여당의 정책 방향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 거부권을 인정한 취지에 맞지 않다.

우리 헌법상 법률안 거부권은 미국식 대통령제에서 기인한다.

미국식 대통령제에서는 정부에 법률안 제출권이 없기 때문에 대통령에게 법률안 거부권을 부여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정부가 법률안 제출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위에 법률안 거부권까지 인정하고 있다.

가히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이라 할만하다.

기형적 대통령제라 비판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는 매우 엄격한 요건 아래 인정되어야 하고 행사 또한 최대한 제한되어야 한다.

거부권이 있다고 하여 정당한 이유와 필요성이 없음에도 대통령과 여당의 정책적 이념에 따라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다.

/이로문 법학박사·민주정책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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