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봄날이 오면

조기호

 

너를 생각하며 꽃이 피고

너를 생각하며 새가 운다고

 

멀쩡한 사람의 심사를

봄날이 와서 찌버까 쌓는다.

 

봄이 오면 봄날이 오면

바다 산맥을 타고 한라산 백록담 가에 앉아

꽃사슴 민족의 푸른 햇살 같은 눈알을 닦아주고

 

봄이 오면 변산 땅 솔섬 모래밭에

아기 고래가 누워 잠이 들거든,

 

봄이 오면 흔들거리는 울산바위

날망에 올라 눈물 나게 울어도 보고

 

봄이 오면 이제하가 슬프게 부른 모란 동백의

꿈속에 찾아오는 모란 아가씨를, 쳐 부르리라

 

봄이 오면 LA서 가나 한국에서 가나

저승 가기는 매한가지란 친구를 만나

 

안드로메다 20만 지름 광년을

맨발로 걸어보자고 했었는데

 

너를 생각하며 봄

바람이 분다.

 

1930년 명왕성을 최초로 발견한 클라이드 톰보라는 미국 천문학자는 죽어서 유골함에 담겨 뉴허라이즌스 탐사선을 타고 명왕성을 지나며 명왕성 사진을 지구로 보내주고선 우주로 날아가고 있다. 우주를 가슴에 품은 시인은 안드로메다 은하를 맨발로 걸어보자고 한 친구를 그리워한다. 저승 가는 길에 출발지는 상관없다고 했으니 계절만 서로 맞추면 되겠다. 그러나 그전에 봄날에는 할 일이 많다. “백록담에서 꽃사슴 닮은 우리 민족 눈알을 닦아주고, 부안 솔섬에서는 고래에게 자장가를 불러주고, 설악산 울산바위에 걸터앉아 실컷 울어도 보고, 죽은 이제하 시인의 시를 노래하고” 싶다고 한다. 얼마나 통쾌하고 멋진 희망인가. 전설의 제주도 할망처럼 걸음을 크게 하여 대한민국 동서남북을 다니면서 말이다. 

찬란하게 빛나는 봄날 아침에게 시비 거는 일은 무모한 일이다. 서너살 먹은 아이에게 인생 철학을 토로하는 것과 같다. 벚꽃이 지니 철쭉이 시작이다. 이제부터 자기들 세상이라는 듯 앞다투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철쭉꽃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부탁한다 철쭉이여, 오래도록 피어 있으라. 너를 따라 봄날도 오래 남아있기를 바라노라. 그러면 나의 봄도 오랫동안 지상에 남아있을 것이다.’ 노시인에겐 바람이 이루어져야 저승도 갈 수 있으니 아직도 안드로메다는 물리적 거리만큼 멀리 남았다. 시인이 소망하는 기도가 이루어지려면 새날로 오래오래 지구에 남는 것이 우선이다. 이 모두가 봄이 오면 생각나는 것인가?

-김현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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