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문 법학박사·민주정책개발원장
/이로문 법학박사·민주정책개발원장

전세사기를 당한 서민들에게 가장 큰 걱정은 전세보증금을 반환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전세보증금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모은 목돈과 은행으로부터 받은 전세대출금이다.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으면 작은 돈이지만 집을 장만하는데 보태거나 생계를 위해 종자돈으로 쓸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전세보증금은 삶의 희망이었고 전부였다.

하지만 전세사기를 당하면서 모든 소박한 꿈과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디딤돌이 무너졌고 전부를 상실했다.

아니, 오히려 갚아야 할 빚만 남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의 마음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다른 범죄로 인한 피해자와 형평에 맞지 않고 전례가 없기 때문에 떼인 전세보증금을 정부차원에서 보장할 수 없다는 정부의 태도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

정부는 전세로 살고 있는 집이 경매로 넘어갔을 때 세입자가 우선 매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매입할 수 없다면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이 주택을 매입해 피해자가 저렴한 임대료로 살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정부의 대책을 보면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정말 절실한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거나 이를 알면서도 직접 지원을 회피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형평성이나 전례 등을 이유로 들고 있는 것 같다.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은 사기 피해에 국가가 먼저 보상하고 나중에 이를 받지 못하면 세금으로 부담하는 제도는 현재까지 없는 제도이고 선례도 없다고 한다.

또한 헌법상 권리체계와 시장경제체제에도 맞지 않다고 한다.

생각하면 할수록 참으로 소가 웃을 일이다.

범죄피해자지원제도를 생각해보자.

지원이 제한적이고 일부 범죄에 한정하고 있지만 그 대상 범위를 넓히는 것은 지극히 바람직하다.

제도와 선례를 논할 문제가 아니다.

집단적으로 이뤄진 전세사기범죄로 인한 피해를 국가가 직접 지원한다고 하여 위헌도 아니며 헌법적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헌법에는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예외규정도 있다.

장관이 헌법을 제대로 알고 한 발언인지 의심스럽다.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피해자 가운데 경매를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주택을 우선적으로 낙찰 받을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 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저렴한 임대료로 살 수 있도록 해도 대출금까지 갚아가야 하기 때문에 삶의 징검다리를 위한 목돈 마련은 꿈도 꿀 수 없다.

전세보증금을 보장할 수 있는 대책이 절실한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전세사기주택에 대한 경매를 통해 회수한 대금으로 피해자를 먼저 지원하고 나중에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전세사기대책특별법안을 제시했다.

이 대안이 피해자가 원하는 대책이기도 하지만 피해자가 온전하게 피해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대책이다.

야당이 내놓은 대책이라고 하여 무조건 반대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정책이 특별법안의 핵심적인 내용이 되어야 한다.

만약 이 내용을 제외하고 특별법안을 통과시킨다면 이 특별법은 많고 많은 특별법 중의 하나가 될 것이며, 형식적이고 생색내기용 입법에 불과할 것이다.

피해 보증금을 회복할 수 있는 이 특별법을 통과시킨 후 정부는 반드시 모든 권한을 총 동원해 범죄수익금을 회수해야 하며, 다시는 이러한 집단적인 전세사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로문 법학박사·민주정책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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