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연인의 죽음

-재개발 지역에서

백승연

 

무너진 서까래 밑 냉이꽃

뭉그러져

실꾸러미처럼 얽혀있네.

 

검고 낡은 운동화

밑바닥 같은 해는 기울고

몸 그림자 깊어

한없이 기울어지는 기울기

 

길게 늘어져 꼼짝 안 하는

한 자연인이 엎어져 있네

 

맨발인 발가락 틈새로 개미들이 오락가락

자음 모음 자판기나 두드렸을까?

길고 매끄러운 손가락은

풀 한 줌 움켜쥐고 바락바락 기어갈 듯

 

속절없이 자란 턱수염 밑

애쓰며 살아온 한 생이 보이네

 

안개속을 헤맨 살얼음 같은 생

그의 지혜는 희미해졌어라. 

 

백승연 시집<사막의 달>(신아출판사.2023)

시인이 시를 짓는 것은 자기만족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시가 자기만의 것이라면 구태여 시집을 엮어서 세상에 내어놓을 일이 아니다. “시는 읽는 사람의 것”이라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칠레의 대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말했다. 그렇다 시인이 짓는 것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서정시 위주로 자기감정에 충실해서 기교를 더하여 멋만 부리는 시가 설핏 좋아 보여도 오래도록 곱씹을 것은 없다. 허무하다거나 싱겁거나 하다가 만다. 서정시를 지으려면 눈물 쏙 빠지게 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시는 사람 냄새가 있는 시라고 생각한다. 감정도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니 기왕이면 자기감정이 아닌 주변 사람이었으면 더 좋겠다. 시가 갖추어야 할 수사와 은유와 기교를 더하여 ‘공유’가 되는 시여야 한다. 아픔을 보고 회피하거나 환희를 보며 눈을 돌리는 것은 시인에게는 비겁한 일이다. 감정을 공유하는 일은 시인이 가장 잘하는 것이 아닌가?

제목과 부제에서 이미 시를 다 지었다. 시인의 마음이 행간에 가득 쌓여있다. 시인의 관심이 시를 통해 타인과 사회로 향해 있고 세상으로 확장되어 간다. 참 다행한 사회이다. 어른 노릇이란 이렇게 보듬어 주고 쓰다듬어 주는 일이다.

-김현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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