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신 '자기의 타인들'

동시대 비극 온몸으로 떠 안은 문학에
대한 저자 이야기··· 한줄기 빛 제공

문신 평론집 ‘자기의 타인들’이 발간됐다.

저자는 이번 평론집을 통해 문학생태의 위기 담론에 대해 이야기한다.

역사적 격변기마다 가장 먼저 존재론적 수치를 견뎌야 했던 것이 문학이다.

일제강점기에, 군부독재의 시절과 민주화과정에서 그리고 후기 자본주의의 용광로에서 문학은 동시대의 비극을 온몸으로 받아 안아야 했다.

그것이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였다.

시대를 전망하고 시대를 진단하며 시대를 추수하는, 이를 테면 문학은 인간 삶의 미래, 현재, 과거를 모두 떠안아야 했다.

그럴 때마다 문학은 존재론적 변화를 이끌어냈고, 문화적 정체성의 갱신을 이루어왔다.

우리 문학사에서 논쟁은 시대와 함께 문학을 변화시켜온 중요한 기재였다.

멀게는 1920년대 내용-형식 논쟁이 있었고, 1960년대 참여-순수 논쟁과 이후의 민족문학 논쟁 등 논쟁은 당대 사회를 구성하는 지배형식에 저항하는 방식이었다.

이천년대 문학권력 논쟁도 새롭게 제기되는 삶과 사회의 요구에 대한 약속의 형식이었다.

90년대 들어 구심적으로 작동하면 이데올로기가 해소되고 주변부를 향해 가는 원심적 사회 구성체가 대두되는 시점에서 집중되어 있는 문학권력을 해체하고 분산해 재구성하고자 하는 약속은 필연적이었다.

문학 재생산의 주체가 독자라는 사실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생산주체인 독자는 줄어드는데 21세기 들어 생산 주체가 꾸준히 증가하는 현상은 이례적이다.

문학적 글쓰기에 관심이 높아지고 자기 책을 출판하는 일이 유행하면서 이미지 시대에 문자 매체가 주목받은 일도 새삼스럽다.

인문학적 사유와 통찰이 중요하다고 떠드는데 정작 문학, 사학, 철학의 학문적 위상은 거꾸로 가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문학은 세계의 비참에 주목하고 비참 속에서도 독자에게 한 줄기 빛을 주는 예술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삶이 곤혹해질 때 문학은 가까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에 사망선고가 내려진 지금, 세계는 더 이상 비참하지 않고 우리 삶도 곤혹하지 않은 것인지 자문한다.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과거에 비하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양적 성장이 우리 삶이 질적 만족도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문학은 우리 삶의 빈 틈, 정확히 말하자면 곤핍과 각박이 자랄 수 있는 비참한 순간을 파고든다.

드물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 그런 빈 틈이 생겨나기 마련이고 눈썰미 좋은 작가라면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저자는 이러한 문학의 방법을 예외 상태를 향한 도전이라 생각한다.

일상의 비참한 순간은 언제나 예외적으로 발생한다.

우리 스스로 그 순간은 예외적으로 믿고 있다.

곤혹과 각박이 예외 아닌 일상이 되는 일은 상상만으로 견딜 수 없다.

가끔 예외적인 순간을 견딤으로써 우리는 일상을 회복할 수 있고, 일상의 가치를 새삼 깨닫는다.

문학을 비롯한 예술의 역할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런 것이다.

저자는 “예외적 순간을 강렬하게 포착하고 형상화해 무난한 일상을 가치 있는 순간으로 만드는 것. 문학은 예외 상태를 예외 아닌 상태처럼 보여주는 힘이 있고, 예외 아닌 사람들에게 예외 상태를 경험하게 한다”며 “이것이 내가 아는 한, 문학의 가장 아름다운 역할이다”고 밝혔다.

2004년 세계일보와 전북일보 시 신춘문예, 2015년 조선일보 동시 신춘문예, 2016년 동아일보 문학평론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죄를 짓고 싶은 저녁’, 동시집 ‘바람이 눈을 빛내고 있었어’, 장편동화 ‘롱브릿지 숲의 비밀’, 연구서 ‘현대시의 창작방법과 교육’ 등을 펴냈고, 우석대 문예창작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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