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지역 대학가근처 원룸 건물
전세사기 발생··· 집주인 3년째
전세금 미반환 피해자만 30여명
피해액 수억원 세입자 돈줄막혀
빌라 건축 전세사기 온상 떠올라

도내 아파트 전세가율 113.9%
전국 17개 시도중 최고치 찍어
매매가 대비 전세가 훨씬 높아
주택시장 하락으로 외지인들
'무자본 캠투자' 주택 사들여
지난달 전세보증사고 8건 발생
사고금액만 16억4천만원 달해
전북도 전세사기 안전지대아냐

피해자 지원 특별법 국회통과
시민사회단체 "반쪽짜리 법안"
복잡한 시행령-시행규칙 비판
'최우선변제금' 무이자 대출
사기피해자 피해금 직접변제
가해자 형사처벌 강화는 빠져
범죄조직 가중처벌-수익환수
규정도 없어 솜방망이 처벌
특별법 사각지대 많아 보완 시급

전세사기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최근 전북에서도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발생했다.

수도권 등 대도시에서는 전세사기가 만연해 피해자들이 아픔을 호소하고 있다.

심지어 전세사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한 피해자들이 목숨을 끊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곳곳에서 전세사고가 발생하자 정부는 전세제도를 대수술 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우여곡절 끝에 ‘전세사기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사각지대’가 너무 많아 피해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전세대란이 사회를 뒤흔들 때마다 정부는 대책을 내놨다.

서민 주거안정을 명목으로 전세 기간을 늘려주고 전세대출을 확대했다.

이 같은 정책은 또 다시 전셋값 급등의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이번에도 수많은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전세사기를 원천 차단하기에는 아직 묘수가 없는 상태다.

전북의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 사례를 소개하고, 높은 전세가율 등으로 고의적인 전세사기 발생 가능성과 대책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전북지역에서도 전세금 미반환 사고 피해  

최근 전북지역에서도 3년 넘게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생겨나 파문이 일었다.

사고는 전북대 앞 한 원룸 건물에서 발생했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받고 학생 등에게 집을 내줬지만 3년여 째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세입자가 나타나지 않아 돈줄이 막히면서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렇게 피해를 입은 사람만 30여명에 이르고 있다는 소식이 연일 전해졌다.

피해액도 수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제는 집주인이 내부 방을 쪼개는 수법으로 숫자를 늘려 불법 구조변경을 했다는 점이다.

피해자들은 전입신고나 확정일자 등에 문제가 없어 전세사기 발생 이후에 이런 사실을 알게 됐다.

집주인은 세입자에게 받은 돈을 자신의 사업자금으로 사용해버렸고 피해자들은 사실상 돈을 받을 방법이 없게 됐다.

일부는 법원에서 전세금 반환 이행 권고를 받기도 했지만 돈이 없다고 발뺌하는 집 주인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는 사실도 전해졌다.

올해 들어 건물은 경매를 거쳐 한 건설업체로 넘어갔고 업체는 철거를 예고하며 집을 비워달라고 통보했다는 것이다.

결국 수사기관과 행정은 집주인에게 사실상의 면죄부를 줬고, 불법 건축물이라는 사실과 피해 상황에 대한 특별한 조치 없이 세입자들만 피해를 입게 됐다.

이런 사례는 전북지역에서도 전세사기와 함께 역전세, 깡통전세 발생 위험이 크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전세사기 출현의 과거사를 살펴보면 흐름을 잘 알 수 있다.

주택 전세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제도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시작됐던 1960년대 주택 전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후 전세대란이 사회 문제화 되면서 1990년에는 서민 주거난 해소를 위한 여러 정책이 나왔다는 것이다.

정책 중 하나는 다세대 주택인 빌라를 많이 짓도록 건축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것이었다.

아파트는 비싼 가격 때문에 한계가 있어 저소득층이 거주할 만한 저렴한 가격의 빌라를 많이 건축하자는 계획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빌라 건축이 최근에는 서민을 울리는 전세사기의 온상이 돼버린 것이다.

특히 전세 시장이 크게 요동친 것은 지난 1998년으로 전국이 외환위기에 빠지면서 부동산 시장은 침체됐고 ‘역전세난’이 등장했다.

이에 따라 실직이나 감봉 등으로 더 싼 전셋집으로 살 집을 옮기려던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많은 피해를 입었다.

새로운 세입자를 구할 수 없어 집이 경매에 넘어간 집주인이 자살하는 비극도 벌어졌다.

전세가가 매매가를 웃도는 ‘깡통전세’도 이때 처음 등장했다.

최근 급증했던 전세사기의 전모를 보면 언제, 어디서든지 피해가 발생할 소지를 안고 있다.


▲전세가율 높은 전북도 안전지대 아냐  

전북은 매매가 대비 전세가가 높게 형성된 지역 중 한 곳이다.

만기가 돌아오면 다음 세입자를 못 구하는 사례도 나타날 우려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보증금 미반환 사태가 우려되는 이유다.

지난 2017년도 말 전북의 전세가율은 급등했다.

전세가율은 점점 벌어지면서 현재 전북의 전세가율이 전국보다 10% 이상 차이가 나고 있다.

지난해 3월 7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도시연구소와 주거권네트워크가 발표한 ‘2021년 실거래가 분석을 통해 본 주거 정책의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전북의 아파트 전세가율은 올 들어 2월까지 평균 113.9%, 지난해 1년 105.1%로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전북의 전세가율은 서울과 수도권, 지방 광역시 등 대도시를 비롯한 전국 17개 시ㆍ도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였다.

아파트 매매가는 수도권과 지방이 양극화한 반면 전셋값은 모든 시•도에서 상승하면서 지방을 중심으로 전세가율이 크게 뛰었다.

문제는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을 나타내는 전세가율이 100%를 웃돌면 전세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는 ‘깡통전세’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북지역 등 지방에서는 이미 전세가격이 매매가격 보다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수천만원 가량 높게 형성됐거나, 전세 체결 뒤 매매가가 하락하면서 전세가율이 100%를 넘긴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전주시내 A아파트의 경우 전용 85㎡의 매매가가 2억4천900만원인데 전세가는 2억8천만원으로 전세가격이 3천만원이나 높게 형성됐다.

일반적으로 깡통전세는 전세가 체결된 주택의 가치가 하락하거나 전세가격이 올라 매매가격에 근접하거나 이를 초과할 때 위험성이 높아진다.

전세가의 하락세율이 전국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지만 전북은 완만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

특히 이번 전세사기의 수법은 주택시장 하락으로 외지인들이 ‘무자본 갭투자’로 주택을 구매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사기꾼들은 빌라의 감정평가를 부풀려 전세금 바가지를 씌웠고, 세입자들은 전세금의 최대 80%를 대출받아 전셋집을 마련했지만 뒤늦게 그 집이 깡통전세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지난 2018년 익산지역에서도 전세사기가 발생한 때가 있었다.

취업준비생과 대학생을 상대로 원룸을 헐값에 매입해 전세보증금을 받고 방을 내줬지만 18채에 대해 피해구제가 안돼 현재는 피해 액수만 100억원이 넘었다는 얘기다.

특히 코로나19, 저금리로 유동성이 풍부해진 상황에서 전세가율이 최고치에 달하면서 그 사이 깡통전세 등 전세사기 사건이 늘어나고 있다.

올해 1분기 전북에서 발생한 전세보증 사고는 14건, 사고 금액은 28억원에 달하고 있다.

수도권과 같은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지만 전북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임대차시장 사이렌’에 따르면 지난 한 달 전북에서 발생한 전세 보증사고는 모두 8건에 사고 금액만 16억4천만원에 이르고 있다.

지난 3월, 4건에 7억6천700만원과 비교하면 사고 건수와 금액 모두 2배 넘게 늘었다.

지역별로는 각각 전주 4건, 군산 2건, 완주와 고창 1건씩으로 나타났다.


▲‘사각지대’ 많은 전세사기 특별법 보완 입법을  

지난달 22일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에 여야가 합의했다.

특별법안의 내용을 놓고 여야가 실랑이를 벌였지만 기존 발의안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결국 전세사기 특별법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다행히 기존 발의안과 달리 특별법 적용을 받은 피해자의 범위는 더욱 확대됐다.

하지만 국회를 통과한 전세사기 특별법에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세사기ㆍ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ㆍ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특별법을 ‘반쪽짜리’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대책위는 “복잡한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정부의 편의와 임의에 따라 만들어진다면 특별법의 실효성은 더 낮아질 것”이라며 “추가 행정조치와 특별법 개정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을 받으려면 크게 네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대항력과 확정일자를 확보하거나 임차권 등기를 마칠 것 △임차주택에 대한 경•공매나 임대인의 파산•회생 절차가 개시될 것 △임대차보증금이 최대 5억원 이내일 것 △수사개시 또는 반환능력 없는 자에게 소유권을 양도하는 등 전세사기로 의심되어야 한다.

이 경우 최우선변제금에 대해서는 무이자로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또 새로운 주택 구입 또는 임차 비용에 대해서도 저리로 대출이 가능하다.

전세자금대출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이 될 위기에 처한 때에는 20년간 무이자로 나눠 갚을 수 있도록 하는 신용회복프로그램을 이용할 수도 있다.

다만 전세사기 피해자의 경우에는 이번 특별법에 피해금액을 직접 변제하는 내용이 빠져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향후 특별법을 시행하면서 피해 유형을 구체적으로 특정하는 과정을 거쳐 각 유형별로 피해 구제 방식을 다르게 정하는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이번 특별법에서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부분이 빠졌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기존에는 사기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조직적인 전세사기 범죄에 대해서도 사기죄를 적용하는 것이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조직적인 전세사기 범죄에 대해서도 가중 처벌이나 범죄수익 환수에 관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아 사기죄 성립을 인정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칠 수밖에 없다.

범죄수익 환수 부분에서는 국가가 범죄수익을 몰수한 뒤 일정한 절차를 거쳐 피해자에게 해당 범죄수익을 환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피해자의 피해 변제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세사기의 위험이 높은 빌라 등의 경우에는 당분간 전세 수요가 적어 임대인이 임대차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일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임대인이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할 수 있도록 대출 규제 완화 등의 대책도 추가로 제시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경기 위축 등으로 역전세난 등 부동산 침체 상황이 이어질 때는 보증금 미반환 위험성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며 “전세가율이 높고 매매 정보가 불투명한 빌라 등 연립•다세대나 소형 아파트 등에 대해 정부가 관리감독망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또한 “공공기관이 우선매수권을 양도받아 임차 주택을 공공임대로 제공해 보증금 손실을 상쇄할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신우기자 l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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