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기호 '고조선의 달'

자조-위트 가득차 독자 가슴깊이 전달
복잡한 인간사 통찰한 원로시인 원숙미

죽을 때까지 시를 쓰겠다는 신석정 시인과 약속 때문에, 덜컥 등단한 책임감 때문에 매일 글쓰기에 매달렸다.

지금까지 스물 댓 권의 시집과 소설, 동시집을 출간하면서 왕성한 집필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조기호 원로시인이지만 내세울 시 한 줄 없다는 겸손을 앞세우며 자신의 글쓰기 인생을 빗대 표현하고 있다.

조기호 신간 시집 ‘고조선의 달’이 인문학사의 인문학 시인선 1집으로 발간됐다.

평소 시인은 편하게 읽고 이해하기 쉬운 시를 써왔다.

구수한 방언과 전라도 특유의 맛을 그리고 다듬어 시라는 표현방식에 담아낸 것이다.

누구나 이해하기 쉬워야만 시의 존재가치가 있다는 평소 지론에서다.

신작 ‘고조선의 달’ 역시 이런 지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시인은 무주 구천동을 비롯해 완주군 용지면, 진북사, 전주 막걸리집, 부안 내소사, 남원 서도정거장 등 도내 곳곳을 배경으로 자신의 시어를 결합시켜 간다.

시인 특유의 다소 자조섞인 언어와 구수한 방언 등이 뒤섞이면서 하나의 시가 완성됐고, 독자들의 가슴깊이 손쉽게 파고든다.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도 않다.

80년이 넘는 인생의 여정을 통해 겪고 얻은 경험과 세상의 이치를 그리고 지난 80여년 살아왔던 자신의 흔적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시인은 제3의 화자인 하눌님을 통해 시어를 이어간다.

하눌님은 시의 화자이자 시인의 또 다른 분신이다.

시인은 하눌과 대화를 통해 세상을 비웃고 과거를 상기시킨다.

때론 뒤로 멀찌감치 물러 앉아 복잡한 인간사를 관통하는 원숙미와 통찰력도 보여준다.

하눌님과의 대화는 마치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 같고, 이제는 곧 조우하게 될 운명적 만남도 암시하고 있다.

진북사에서 사마승에게 입장 거절당하고 교회 뾰쪽탑 근처도 가지 못한 채 군청 국기게양대로 내려온 하눌님과 함께 새벽시장에서 고수를 사고, 양수발전소 댐에서 낚시도 하고, 곤돌라를 타고 향적봉에도 올랐다.

천 년 죽어 천 년 허연 나체로 서서 반기는 구상나무와 주목의 알몸을 쓰다듬기에 한창 바쁜 모습을 보이지만 이것이 바로 시인이 겪고 경험하고 느꼈던 세상 모든 것들의 집합체 인 것이다.

시인은 “해마다 시집 한 권을 내고 어느 해는 두 권을 만드는 작업에 몰두했다. 글이 되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쓰다 보면 하나쯤은 쓸 만한 걸 얻을 수 있잖을까 여겼다”며 “글과 그림과 음악 특히 판소리와 육자배기가 있는 전북에서 자라고 생활하는 덕분에 그것들의 멋진 맛과 기품을 시라는 표현방식으로 엮어볼 수 있어 행복하다”고 밝혔다.

전북 전주 출생으로 전북대 국문학과를 수학하고 동인지 ‘헝그리영맨’을 창간했다.

계간 우리문학으로 등단했으며, 건축직 공무원으로 50년 봉직했다.

전주문인협회 회장과 전주풍물 시동인회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전주문인협회 고문이다.

표현문학상, 시인정신작가상, 전북예술상, 후광문학상, 목정문화상, 한송문학상, 전주문학상, 한국문학백년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는 ‘저 꽃잎에 흐르는 바람아’, ‘바람 가슴에 핀 노래’, ‘산에서는 산이 자라나고’, ‘가을 중모리’, ‘새야 새야 개땅새야’, ‘노을꽃보다 더 고운 당신’, ‘별 하나 떨어져 새가 되고’, ‘하현달 지듯 살며시 간 사람’, ‘묵화 치는 새’, ‘겨울 수심가’, ‘백제의 미소’, ‘건지산네 유월’, ‘사람을 만나서 사랑을 꿈꾸었네’, ‘아리운 이야기’, ‘신화’, ‘헛소리’, ‘그 긴 여름의 이명과 귀머거리’, ‘전주성’, ‘민들레 가시내야’, ‘이별백신’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 ‘색’을 발간했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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