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인조 때의 문신 김상헌의 시조중에 ‘세월이 하 수상하니'라는 문장이 나온다. 당시 김상헌이 이 시조를 지을 때는 조선의 국력이 약하여 병자호란으로 패하고 김상헌이 청나라로 끌려갈 때의 심정을 표현했다. 당시의 시국에 대한 심정을 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양의 삼각산과 한강수에게 이별을 고하고 다시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한탄과 원망을 품고 있는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는 절대 봉건주의의 조선시대이기 때문에 신하의 의견을 받아 통치하는 왕권이지만 그 왕의 권한은 최고의 통치였기에 청나라에 항복하고 삼전도의 굴욕을 겪었지만, 아무튼 왕의 존엄함은 조선 사회에서는 최고였기에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었다. 

왕의 권한을 침해한다는 생각이 들면 왕은 가차 없이 죄의 형벌을 물어 사사하거나 유배를 보냈던 것이 당시의 사회였다. 이러한 절대 봉건주의가 500년 동안 이어졌고 근대를 거치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이제는 자유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질서의 사회체제가 한반도에 들어왔고 불행히도 남한만이 이러한 혜택을 받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물론 이전에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왕의 권리로 착각했던 몇몇 독재자들이 있었지만, 민의에 의해 퇴출당하거나 측근에 의해 사망하는 등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새로운 질서의 이념으로 점차 성장하게 되었다.

이제는 과거에 군부독재니 하는 용어 등이 사전에나 기록될만한 역사의 한 부문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이러한 역사의 한 부분으로 전락했다고 하는 용어가 언론을 통해 검사 정권으로 변경되고 있다.

검사독재라는 말은 없지만 현 정부의 중요 직책의 대부분을 검사 출신들이 장악한 것에 따른 언론의 표현이다.

사실 검사 등 법조계 인사들의 면면은 우리 사회의 엘리트 집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사뿐만 아니라 판사와 변호사 등 법조 3륜을 일컫는 당사자 집단들의 자부심과 우수성은 자천타천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는 그들 집단을 권력이라는 말로 표현하면서 절대 권력의 맨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권력을 가진 집단은 바로 정치적인 함수를 가지고 있기에 그들의 권력 앞에서는 경제인을 비롯한 수많은 사회구성원이 종속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들 권력자의 행태이다. 민주주의의 다원사회에서는 민중들의 여론이 매우 중요하고 진영 집단 간의 상호대화와 토론 등을 거쳐 절차적 민주사회를 이끌어 가야 하는데 현대 우리 사회는 진영의 변경이 있을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지금 정부는 전 정부의 잘못된 행태를 일소한다는 명분과 함께 전 정부에서 임명된 임기가 보장된 직위의 기관장들을 압박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세월이 하 수상하니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는 것 같다.

사회체제를 민주사회라는 대 전제하에 집권자들의 정책에 따라 정책을 비롯한 정치이념이 다르다 보니 지난 정부의 모든 정책에 대해 평가절하하고 자신들의 새로운 정책이 최고인 것처럼 한다.

검사 출신들을 중용하는 것과 함께 권력자들의 주변에 기생하는 자들을 중용하는 요즈음은 그야말로 세월이 하 수상할 수밖에 없다. 결국 반복되는 일상에 다시 변화하여 새로운 진영이 권력의 중심에 자리 잡을 경우 전 권력은 다시 언저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풀이 되는 악순환을 막을 수 있는 길은 없는가?

문화예술계 역시 예전에 블랙리스트 파문이 있었는데 현 정부를 비롯하여 다음 정부에서도 이러한 악순환이 끊어질 기미가 보이는가? 안타깝지만 세월이 하 수상하니 지켜볼 뿐이다.

/이경로 문화예술 전문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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