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미자 '전북무형문화재 제60호 색지장 김혜미자'

늦깎이 나이에 색지공예 매력에 푹 빠져
한지의 고장 전주 한지박물관 건립 노력

“적성에 맞고 한지를 사랑하는 것이 벗보다도 유별나게 한지를 사랑하는구나. 이렇게 스스로에게 자문을 했을 때 그렇다는 답이 나온다면 포기하지 말고 이 길을 갔으면. 그게 후배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소망이다.”

색지장 김혜미자의 일대기를 기록한 ‘전북무형문화재 제60호 색지장 김혜미자’가 출간됐다.

꽃꽂이로 명성을 날렸던 김혜미자 색지장은 어느 날 우연히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색지공예를 만드는 것을 보고 큰 쇼크를 받게 된다. 내친김에 서울로 올라가 한지공예를 배우게 됐고, 1993년 첫 개인전을 통해 한지공예를 알리게 됐다.

이후 전주한지를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주한지가 유명하다는데 아무도 이런 공예가 있다는 것을 몰라 한지공예를 보여줘야겠다는 의무나 사명감마저 들었다.

1995년 전주한지공예대전이 시작됐고, 1997년에는 한지문화축제로 활성화되면서 한지공예대전은 부속축제로 발전해 올해가 한지공예대전 29회, 한지문화축제 27회를 맞게 됐다. 즉 전주 지역에 한지공예대전의 씨앗을 내리게 한 장본인이 된 셈이다.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그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이걸 끝까지 배워서 누구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한지공예 중 색지공예를 택했다. 과거 익혔던 꽃꽂이 기술이 도움이 됐다. 꽃꽂이는 어떤 꽃을 꽂느냐가 아니고 어떤 꽃의 색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된다. 꽃이나 한지나 어찌보면 똑같다고 생각했다. 꽃꽂이을 통해 얻은 경험과 감각이 한지 색지공예에서 색이 어떻게 조화롭게 이뤄지는지 따라서 작품의 품격이 달라지게 된다.

이제는 색지공예 자체가 삶 자체가 되어 버렸고, 아직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색의 조화이다. 색의 조화는 공예 뿐 아니라 서양화, 수채화, 동양화, 서예 등의 전시장을 틈틈이 찾아 얻게 된다. 대한민국 박물관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이런 열정 덕분에 늘 제자들이 곁에 있었다. 하루 일주일에 60여명을 가르친 적도 있었고, 지금은 선생님이나 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북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됐고, 아직도 현역 못지 않게 활동하고 있지만 내심 아쉬운 점도 많다. 전주가 한지의 고장이라는 기록이 있듯이 그걸 증명하는 한지박물관이 건립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한지박물관 건립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모든 정성을 다해 그 몫을 다할 계획이다. 조금만 더 일찍 시작했다면 미술대학에 한지과를 만들고 국립대학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처음엔 하고 싶은 일도 많았지만 이제는 지난 일이 되어 버렸고, 후배들이 못다한 아쉬움을 채워주길 바랄 뿐이다.

김혜미자 색지장은 “마음에서 우러나와 좋아하는 마음을 먼저 가슴에 담고 작업에 임하면 그게 상으로 이어지고 내 마음이 부자가 된다”며 “최선을 다하는 건 솜씨만이 아니라 마음가짐이 그랬을 때 우리 선조들이 했던 것을 우리 후세에 또 이어주는 길이 아닐까 좀 늦은 생각일지 몰라도 그 생각이 간절하다”고 밝혔다.

김혜미자 색지장은 승지장 관장, 전주전통한지공예연구회장, 한지공예대학 강사, 대한민국한지대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2009년 문화관광부 표창, 1995년 제1회 전국한지공예대전 대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전북무형문화재 제60호 색지장으로 지정돼 있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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