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문 법학박사 민주정책개발원장 
/이로문 법학박사 민주정책개발원장 

이번 폭우로 인한 사망자는 44명이나 되며 피해액은 아직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재해이기에 안타까움이 더 크다. 폭우 자체는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재해이지만 폭우로 인한 결과는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적 성격이 컸기 때문이다. 특히 충북 오송 궁평 지하차도 참사는 총체적 부실로 인한 명백한 인재다. 책임자를 중대재해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재는 상당부분 정부의 노력으로 예방할 수 있음에도 매년 동일한 피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폭우로 인한 모든 피해를 다 예방할 수는 없지만 재해에 대한 무딘 반응 때문에 막지 못한 경우가 많다. 자연재해라도 민감하지 않으면 피해는 확대될 수밖에 없다. 홍준표 대구시장의 골프 논란과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대응, 폭우가 내리는 기간 대통령의 부재 역시 재해에 민감하지 못한 탓이다. 장마철이 되면 국민들은 혹시나 발생할지도 모르는 재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외출과 여행을 삼가고 피해를 야기할 지도 모르는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대비를 권하기도 한다. 일반국민조차 이러한데 골프를 친 게 뭐 잘못이냐는 식의 대응은 재해에 대한 안이한 자세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집중 호우 때에 컨트롤타워로서의 대통령은 자리를 지키는 그 자체만으로도 공무원들의 대응 정도를 달라지게 만든다.    

재해에 대한 국회와 정부의 대책 역시 예민해야 한다. 즉 법과 예산이 ‘민감하게’ 뒷받침되어야 한다. 국회에는 침수 방지와 관련된 법안이 상당수 계류되어 있지만 신속하게 처리하지 않고 있으며, 정부 역시 예방대책에는 예민한 감수성이 느껴지지 못한다. 

법과 예산을 집행하는 공무원 역시 일선에서 재해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 재해에 대해 예민한 감각을 유지하면 재해예방 예산에 대한 투자가 달라진다. 사후 구제 예산보다는 사전 예방 예산이 훨씬 더 많이 소요될 수도 있으며, 예산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비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재난재해 예방 시설은 일단 갖추고 나면 이후에는 적은 예산으로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재해에 대해 민감하지 않으면 이러한 예산 편성과 집행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한 면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피해 주민들 앞에서 “정부가 이럴 때 쓰려고 돈을 아낀 것”이라고 한 발언에 씁쓸한 생각이 든다. 지극히 당연한 발언이지만 사후약방문격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정부가 피해구제를 위해 불요불급한 예산을 절감하는 것보다 차라리 재해예방을 위해 예산을 적극적으로 집행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재해에 대한 민감성은 특정시기에만 유지해서 될 일이 아니다. 재난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그 민감성을 유지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및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교훈을 새기고 민감성만 유지하고 있었어도 폭우로 인한 피해를 대폭 줄일 수 있었다. 

지금은 신속한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통해 구제 및 복구 등 재난수습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동시에 내년도 예산안에는 재해예방 대비 예산을 대폭 반영해야 한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만 반짝 관심을 갖다가 시간을 보내며 흐지부지 방치하는 폐단을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 된다. 불가항력으로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변명을 늘어놓기 전에 국민을 위한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먼저 되돌아보기 바란다.

/이로문 법학박사 민주정책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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