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km 해안 따라 김제평야-만경강
마주하며 새만금 바람길 트레킹 시작
김제 문화-역사가 담긴 사찰 '망해사'
새만금방조제로 갇힌 담수호 '심포항'
김제역사-한적한 자연 풍광 한껏 감상

무더운 여름은 계곡, 산, 바다 등 자연을 벗삼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향하는 날이 잦아드는 요즘인데요, 한여름을 맞이 이열치열로 ’김제 새만금 바람길‘로 향해봅니다.

 ’김제 새만금 바람길‘은 12km로 해안을 따라 김제 평야와 만경강을 마주하며 트레킹하는 길로 역사가 담긴 망해사, 쉼터가 되어주고 있는 심포항 등 김제의 관광지를 만날 수 있는 코스여서 김제와 관련된 역사 뿐 아니라, 한적한 자연의 풍광을 한껏 감상하며 걷는 길이기에 그곳에 담긴 이야기와 만남에 대한 시간은 뿌듯함로 가득 담아지는 코스입니다.

“‘김제 새만금바람길’의 풍경을 함께 만나보실까요?“

 

김제 새만금 바람길 코스는 행정복지센터에서부터 여정을 시작하는데요, 본 코스의 안내도는 출발점에서 5분 정도 걸으면 아래의 안내판을 볼 수 있습니다.

길 안내에 대한 정보는 안내판의 좌측 위의 ‘전자지도 QR’의 바코드를 폰으로 찍어 참고하거나, 전라북도 생태관광 홈페이지에 안내된 전북천리길 위치 정보 안내의 길찾기를 참고하면 됩니다.

▶ 전북천리길 위치 정보 참고  https://www.jb-ecotour.org/page/page34
 

안내판을 바라보고 좌측으로 직진하면 ‘새만금 바람길’ 시점을 알리는 푯말, ‘전북천리길’과 ‘서해랑길’이라는 글씨가 적힌 파랑색과 노랑색의 리본을 만나게 됩니다.

‘전북천리길’은 전라북도의 생태계가 보존되도록 자연을 최대한 훼손시키지 않고 사람들이 트레킹을 할 수 있도록 걷는 해안길, 산들길, 강변길, 호수길인 총 4코스로 나뉘어져, 역사와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길인데요, 이에 더해 서쪽의 바다(파도)와 함께(랑) 걷는 길을 의미하는 ‘서해랑길’도 본 코스에 포함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트레킹의 여정이 시작된 지 20분 채 되지 않아 진봉방조제의 간판을 보게 되는데요, 이곳이 김제 호남평야의 중심을 이루는 넓은 평야지대를 일본이 식량 수탈의 목적으로 간척 사업을 실시하여 방조제를 쌓아 조성된 농경지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당시 식민지 조선은 식량부족에 시달려야 했던 아픔이 담긴 곳입니다.

이 방조제가 1924년 준공되어 진봉지구와 심포지구로 구분관리 되었는데, 지금 자리한 이 푯말의 위치가 진봉면 고사리 지선입니다.

새만금 바람길의 여정 시간 동안 마주하게 되는 풍경은 김제 평야를 담고 있는 풍광을 한껏 바라보며 걷는 시간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데요, 우리 근현대사의 수탈당한 땅과 뿌리 뽑힌 민초들, 그리고 항쟁의 이야기가 담긴 김제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걷고 있노라면, 아름다운 풍경을 담고 있는 감상에 빠져있다가도 아픈 시련의 역사가 떠올려지기도 합니다.

새만금 바람길은 돌과 흙의 비포장 도로와 산길, 습지를 걷게 되며, 햇빛이 직광으로 비쳐드는 길이 많기에 모자와 썬크림, 긴바지가 필수랍니다.

 저는 비가 오고 난 후 땅이 채 마르기 전에 방문했기에, 질퍽한 바닥을 밟고 조심히 건너야 했는데요, 본 트레킹을 할 예정이라면 비가 오는 전날과 후는 피하여 땅이 마른 날에 걷기를  추천합니다.

석소마을은 옛날부터 질 좋은 숫돌이 많아 나라에 공납하면서 ‘석소’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석치마을은 돌이 쌓여서 고개처럼 이루어졌다고 해서 불리었다고 하는데요, 석소마을의 푯말에서부터는 습지와 산길을 번갈아 만나게 되며, 다소 좁은 길을 걷게도 하니 조심스럽게 안전에 유의하며 걸어야 합니다.

 산을 오르락 내리락하는 길을 따라 내려와 전선포에 다다르면, 그리 길지 않은 길이지만 좁은 폭으로 걷는 길이였는데요, 바람까지 세게 불어 꽤 많은 긴장을 하며 걸어온 터라 시근땀이 흐르기도 했어요. 하지만, 뒤돌아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긴장은 사라지고 멋진 풍광으로 담아져 절로 뿌듯함이 가득 몰려왔답니다.

전선포라는 안내표시가 있는 사진의 위치는 본 코스의 전북천리길 스탬프함이 자리한 곳인데요, 이곳은 만경강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고군산 열도와 계화도가 가까이 있어 예로부터 어선의 닻을 내리는 항구로 왜구의 적선과 싸움을 하기 위해 배를 배치시켰던 곳으로 군사 전략상 중요한 요새지였던 장소라고 해요.

왜적이 침입했을 때 서쪽 봉화산 정상 봉화대의 신호에 따라 군선으로 왜적을 물리쳤던 곳이라 하여 ‘전선포’라 불리게 되었다고 해요.

하지만, 1920년대 일본인들의 간척 사업으로 만든 ‘전선포’ 제방으로 일부는 농경지가 되고 일부는 해안이 되어 과거의 흔적은 사라져, 현재는 당시의 흔적을 볼 수는 없답니다.

이곳이 습지와 평야가 아닌 바다였다는 것에 믿기지 않을 정도였는데요, 당시에는 이곳이 얼마나 넓은 서해의 바다가 담긴 항구의 모습이었을지 상상도 해봅니다.

”전북천리길에서는 인증도장을 찍는 건 트레킹의 시간 중 즐거움과 걷는 뿌듯함을 더해주지요. 34도의 한여름에 힘들게 땀을 흘려 걷고 풍경을 감상하며 도착해 인증도장을 찍으니, 고생한 만큼 그 기쁨과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더욱 크게 다가왔답니다!”

산과 습지를 걷는 길로 풀이 무성해 곳곳에서 여치와 나비를 쉽게 볼 수 있었는데요, 혹여나 실수로 밟게 될까 싶어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지기도 했어요. 

전북천리길을 걸으며 느끼게 되는 점 중의 하나가 자연을 고스란히 몸소 체험하고 보고 느낄 수 있어,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생명들도 만날 수 있다는 점인데요, 더욱 자연에 대한 소중함이 느껴지게 된답니다.

전선포를 지나면 망해사를 만나게 됩니다.

망해사는 서해 낙조가 아름답기로 소문이 자자한 곳인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며, 재건축과 중수의 시간을 거쳐 현재 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답니다.

만경강 하류 진봉산 기슭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자리하고 있는 망해사에서는 김제의 문화와 역사의 시간이 담긴 문화 관광지인 김제 지평선을 자연스레 마주하게 되는데요, 남향으로 보이는 심포산 정상에는 고려시대에 축조하여 연기와 횃불로 적의 침입을 알렸던 봉수대가 있습니다.

망해사 낙서전은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28호로 지정되었었으나,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는데요, 조선 선조 때 22년(1589)에 진묵스님이 처음 지은 것으로, 1993년과 1977년에 고쳐 지었습니다.

신라 문무왕 11년(671년) 부설스님이 처음 망해사를 세웠다고 하는데, 그때의 절은 땅이 무너져 바다에 잠겨버렸다고 하는데요, 그 이후 다시 지어 현재의 모습을 갖춘, 편액에 ‘낙서전(樂西殿)’이라 써져 있고, 4개의 주련이 걸려있는 낙서전에는 신중도가 봉안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문이 닫혀있어 입장이 제한되어 볼 수 없었습니다.

낙서전 정면에는 조선 선조 때 진묵대사가 지은 낙서전과 역사를 같이한다고 전해지는 수령 약 400년의 보호수인 팽나무를 볼 수 있는데요, 그 높이와 크기가 가늠하지 못할 만큼 너무나도 커 놀랍습니다.

 팽나무 아래에는 1999년 가을에 세운 매향비가 있는데요, 매향이란 1000년 뒤에 꺼낼 것을 기약하며 바닷물과 계곡수가 만나는 곳에 향나무를 묻어 복을 빌고 미륵불이 출연하기를 기원하는 불교 의식이며, 매향비는 그 기원과 향을 묻은 자리를 기록한 비석이라고 해요.

망해사 옆 진봉망해대로 향하기 전, 국립공원 현충원 애국지사이신 남촌 곽경열 선생의 묘소와 추모비를 볼 수 있습니다.

곽경렬 선생은 1901년(고종28) 9월 17일 전북 김제시 진봉면 남상마을에서 태어나 1915년 7월 15세의 어린 나이에 항일 비밀결사대인 광복조직회에 가담해 활동을 시작하고, 1918년 항일운동 전개와 1920년 군자금 모금활동을 하는 등 독립운동에 힘쓰다 4년 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2년의 모진 고문 끝에 2년 후인 1926년 3월 29일 전주지방법원에서 3년의 징혁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뤘습니다.

1990년 건국 훈장 애국장으로 추서되어 2009년 9월 22일 이곳에 추모비가 세워졌고, 2012년 8월 25일에 남촌 곽경열 선생의 묘소를 이곳으로 안장했다고 해요.

스쳐 지나가는 길이지만, 조국을 위해 몸 바친 곽경열 선생의 묘소나 비석 앞에서 잠시 묵념을 하며 감사한 마음을 담은 후, 조용히 자리를 떠났습니다.

 

# 두곡서원

두곡서원은 조선 후기 서원으로 성리학자 강원기(1423-1498)의 거처가 있던 곳으로, 방문하려 하였지만 문이 잠겨있어 건물 밖에서만 바라봐야 했는데요, 성리학자 강원기는 야은 길재, 정몽주와 더불어 경전을 읽어 유풍을 크게 진작시켰고, 그가 경원과 은성 두 고을의 수령으로 있을 때 충성과 효도의 길을 가르쳐 주는 ‘이존록’이라는 책을 만들어 집집마다 나누어 주었다고 해요. 

태조 때 좌부승지에 제수되었으니, 그 후 간청하여 벼슬을 사양하고 만경현(지금의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정착해서 이곳의 세 가지 폐단을 고쳐주어 주민들의 고충을 풀게 되었고, 그는 후세에 <봉호집>이라는 유집을 남겼다고 합니다. 

지방 사람들은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두곡서원을 세우고 포은 정몽주, 봉호당 문헌공 강원기, 난계 함부림 등을 배향하였다고 해요.

망해사 옆에는 진봉산 뒷산에 자리한 김제 평야를 시원스레 관망할 수 있는 3층 규모의 ‘진봉망해대’를 볼 수 있는데요, 망해사 옆에 위치해 있어 보통 ‘망해사 전망대’라는 이름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확한 명칭은 ‘진봉망해대’이며, 이곳은 서해의 세찬 바람과 일몰을 감상하는데 아름다운 장소로 손꼽히는 장소입니다.

‘진봉망해대’에서 주위의 풍경을 담아보았는데요, 첫 번째 영상은 평야를 중심으로, 두 번째 영상은 서해 방면의 영상을 담아 보았어요.

오전에 비가 왔던 터라 물이 탁하지만, 날씨 좋은 날에는 더욱 맑은 물과 파란 하늘로 아름다운 곳이랍니다.

 

# 심포항

다소 급경사이지만 흙과 계단으로 이루어진 산을 오르고 내려오면, 시원스레 펼쳐진 만경강 하류에 위치한 어항인 심포항을 만나게 되는데요, ‘진봉망해대’에서 보았던 영문의 김제라는 글자가 아닌, 한글의 ‘김제’라는 글자가 더욱 멋스럽게 다가옵니다.

심포항은 100여 척이 넘는 어선이 드나드는 큰 어항이었는데, 연안 어업의 쇠퇴와 새만금방조제 공사로 인해 지금은 담수호가 되었는데요, 드넓은 심포항에는 배가 몇 척 자리해 있었고 갈매기가 날아들어 한적함의 풍경을 안겨주고 있었습니다.

일몰 시간이 되면 ‘진봉망해대’ 외의 또 다른 장소로 서해 낙조의 아름다운 풍광으로 해넘이를 감상하기에도 그만인 장소랍니다.

봉화산 봉수대를 지나 1.5km를 걸으면 거전마을회관인 도착 지점에 드디어 다다르게 되며 총12.97km의 여정을 마치게 됩니다.

김제는 호남평야에서 쌀의 곡창지대로 전주, 익산, 군산과 인접하여 일제 수탈의 역사가 담긴 지역 중 한 곳으로, 관광지로써 새만금 바람길을 걸으며 일제 강점기 쌀 수탈에 대한 식민지 시대와 당시에 변화되었던 풍경, 습지가 가득한 평야에 위치한 방조제와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사용되었던 항구, 조용한 사찰의 분위기 속에서 망해사에 담긴 이야기와 역사적 가치가 담긴 문화재를 직접 만나보고 느낄 수 있었던 장소로, 트레킹을 하며 보람 있는 시간으로 충분합니다.

“한없이 넓게 펼쳐진 평야 지대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상에 빠져 걷다, 푯말에 적힌 내용을 읽어보며, 새만금 바람길에서 김제의 역사와 아름답고 시원스런 풍광을 담아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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