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정일 '신정일의 新택리지'

택리지 여덟번째 시리즈 '충청'편
지역에 얽힌 역사적 사건-설화 등 담겨

대한민국 도보답사의 선구자 신정일 작가가 전국 방방곡곡을 직접 걸으며 완성한 도보답사기 ‘신정일의 신 택리지’ 시리즈의 여덟 번째 책 ‘충청’ 편이 출간됐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충청도에 대해 “산천이 평평하고 아름다우며 서울과 가까워 풍속에 큰 차이가 없으므로 터를 고르면 가장 살 만하다”고 했다. 이러한 연유로 예부터 양반이 많이 살아서 ‘충청도 양반’이라는 말이 있기도 하다.

충청도는 대부분이 한남금북정맥과 금북정맥에 있는데, 계룡산의 형세가 비범하여 한때 조선의 도읍지로 낙점되기도 했다. 그 이전 삼국시대에는 삼국의 각축지였다. 안면도부터 청양, 서천, 공주, 부여, 대전, 천안, 괴산, 옥천, 청주까지, 그리고 신비로운 계룡산과 속리산, 추풍령, 미호천까지 충청도 곳곳에 숨은 재미있는 지리, 역사, 사람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은 마치 입담 좋은 해설사와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꼼꼼히 답사하는 것처럼 충청도의 지형과 지세, 각 지역에 얽힌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 전해 내려오는 설화들, 지명의 유래까지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여주며 한반도 전역에 대한 균형감 있는 인문지리학적 통찰을 준다.

책은 청풍명월, 사통팔달의 고장인 충청도 곳곳의 흐르는 세월의 흔적을 찾아간다. 예를 들면 

조선 개국에 앞장섰던 정도전에게 이성계가 조선 팔도의 사람을 평해보라고 하자 그는 충청도 사람을 ‘맑은 바람 속 밝은 달’, 즉 청풍명월이라 평했다.

내포평야의 중심에 자리한 예산에는 알부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인 1913년 5월에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 은행인 호서은행이 세워지면서 충청도 금융의 중심지가 되었다.

‘정감록’을 적극 활용한 인물들이 정여립을 비롯한 조선의 혁명가들이다. 이러한 사상에 힘입어 수많은 종교 사상가들이 계룡산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는데, 1970년대에 정화 작업이 있기 전까지 종교 단체 수가 100여 개에 이를 정도였다 한다.

‘강경 사람 벼락 바위 쳐다보듯 한다’라는 말이 있다. 강경은 대부분 들판이라 강경 사람들이 높은 바위를 보면 그 바위가 떨어질까 봐 자꾸 쳐다보듯이, 낯선 것을 보면 자꾸 쳐다보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당진의 명물로 당진란이 있었다. 당진 해안에서 서식하는 숭어의 알로 만드는 어란을 말하는데 그 맛이 전국 최고였다.

충청북도 사람들은 제천 사람들을 두고 “속곳 바람으로 10리를 달려도 끄떡없다”라고 하는데, 이는 제천 사람들의 강인하고 끈질긴 기질을 두고 하는 말이다.

원효는 어느 날 “천년 후에 이 앞에는 호수가 생겨날 것이며 호수가 생겨나면 ‘임금 왕王’ 자의 지형이 형성되어 왕이 이곳에 와 머물게 될 것이다”라고 얘기했는데 그러한 예언 때문인지 이 절 앞에는 대청호가 있고 대통령 전용 별장인 청남대가 들어섰다.

신정일 작가는 30년 넘게 우리 땅 곳곳을 답사한 전문가로 각 지역 문화유적은 물론 400곳 이상의 산을 오르고, 금강·한강·낙동강·섬진강·영산강 5대 강과 압록강·두만강·대동강 기슭을 걸었으며, 우리나라 옛길인 영남대로·삼남대로·관동대로 등을 도보로 답사했다.

부산 오륙도에서 통일전망대까지 동해 바닷길을 걸은 후 문화체육관광부에 최장거리 도보답사 길을 제안하여 ‘해파랑길’로 조성되었고, 그 외에도 소백산자락길, 변산마실길, 전주 천년고도 옛길 등의 개발에 참여하였다.

이렇듯 두 발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걸어온 신정일을 김용택 시인은 “현대판 김정호”라 했고, 도종환 전 문화관광부장관은 “길 위의 시인”이라고 했다.

김정호가 그랬듯 산천 곳곳에서 건져 올린 생생한 이야기를 담은 ‘신정일의 신 택리지’ 시리즈는 우리 시대 대표적인 국토 인문서로 독자들에게 이 땅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조석창기자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