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776m의 후지산을 오르는 트레일(코스)은 4곳이 있다. 짧은 코스는 가파르지만 빨리 도달할 수 있다. 긴 코스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상대적으로 조금 쉽다. 

후지산 산행의 핵심인 새벽 일출과 후지산 그림자를 보려면, 전날 밤부터 올라가야 한다. 마치 초겨울같은 어둠과 낮은 기온을 극복해야 한다. 3,000m 이상부터 시작되는 고산병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이 모든 걸 적당히 생각하고 올랐다간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목표로 했던 일출이나 그림자를 보기는커녕 구급대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 실제 상당수의 등산객이 고산병으로 위험에 처한다. 

새벽 일출을 보기 위해 오전 5시 이전에 후지산 정상에 올랐다 해도, 또 하나의 난관이 있다. 바로 날씨다. 맑은 날이 아니면 일출을 볼 수 없다. 후지산은 수시로 비바람이 불기 때문에, 정상을 오르는 데에도 상당한 운이 따라야 한다. 

더욱이 후지산은 만년설로 위험해 7월부터 9월10일까지 딱 두 달간만 등산이 가능하다. 외국인이라면 연초부터 미리 예약하는 게 필수다. 
 

#2. 1600년 9월15일. 

일본 중부 기후현의 '세키가하라'에선 오늘의 일본 역사를 만든 대전투가 펼쳐진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과 이시다 미쓰나리의 서군이 일본 통일을 위한 일대 전쟁을 치른다. 죽느냐, 사느냐의 대전투에서 동군이 승리하면서 이른바 도쿠카와 막부가 이후 260여년간 일본을 통치하게 된다. 

세키가하라 대전투의 교훈은 그야말로 '생즉사, 사즉생'이다. 이순신 장군, 안중근 의사의 표현으로 너무나 익숙한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는 말은 바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도 잘 나타난다. 

지금의 세키가하라 지역은 한적하고 평화로운 시골마을 그대로다. 400여년 전 여기에서 피비린내 나는 대전투가 펼쳐졌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올해 여름 휴가로 후지산 일출산행과 세키가하라를 다녀왔다. 운좋게 일출도 보고, 세키가하라의 전투 현장도 충분한 여유를 두고 걸어봤다.  
 

#3. 전북은 새만금 예산 삭감이라는 최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새만금과 거의 관계가 없는 세계스카우트잼버리의 초반 파행으로 30여년의 새만금이 흔들리고 있다. 엉뚱하게도 새만금 공항 건설이 주타킷으로 떠올랐다.   

새만금은 과거 노태우 정부에서 시작된 국책사업이다. 전북의 사업이 아니다. 전북은 잼버리 파행과 관련한 책임을 놓고, 담당해야 할 부분은 당연히 져야 한다. 하지만 과다한 책임론의 희생양이 돼선 안 된다. 

전북의 새만금은 흡사 후지산 정상과 같다. 정상을 향한 등산로에는 앞서 말했듯 여러 코스가 있다. 빨리 오르건, 늦게 올라가든 언젠간 도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선 날이 흐릴 수도 있고 비바람이 몰아쳐 중단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가능하면 빠른 기간에 정상에 올라야 하고, 새만금 플랜을 완성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선 세키가하라 대전투와 같은 결기가 필요하다. 전북 국회의원들이 단체로 삭발까지 단행했지만 새만금 예산을 복원시키겠다는 여권의 확실한 메시지는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전북 정치권의 사즉생 각오가 부족한 것 아닌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목숨을 걸고 전투에 나서야 승리의 기회가 온다. 적당한 방안을 찾는다고 시일을 허비하다가는 자칫 제2의 LH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 전북도와 정치권의 결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일현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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