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마관 전주성 수비 제일선
임무교대 사열등 재연도

이춘구 /칼럼니스트
이춘구 /칼럼니스트

“이 고을(本縣)은 남으로는 임실현 경계까지 42리, 병영까지는 330리이다.” 천천히 읽다보면 이 고을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전주부의 경역을 설명하는 것이다. 『완산지』에 기록된 내용이다. 완주?전주통합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요즘 『완산지』를 보다 보면 이처럼 완주?전주가 원래 한 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완주?전주가 다시 하나로 되는 것은 필연적인 역사의 법칙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겪은 뒤 남쪽의 왜구 침탈을 격퇴하고 전주성을 지키기 위해 제일선에 만마관(萬馬關)을 설치하고, 제2선에 남고산성을 강화했다. 만마관을 관리하는 진영으로 남관진을 두는 것은 당연하다. 유사시에는 강진의 병마절도사에게 비상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방어체계를 구축했다고 할 수 있다. 만마관은 순조 11년(1811) 전주부 만마동에 축조한 관방이다. 순조 11년 전라감사 이상황이 전주부의 만마동은 바로 옛날 1만 마리의 말을 감추었다고 일컬어지는 곳으로 지세를 이용해 성을 쌓아야 한다고 건의하는 장계를 올려 만마동 남쪽에 만마관을 만들게 됐다.

이후 고종 5년(1868) 전라 우도 암행어사 이돈상과 고종 10년(1873) 전라감사 이호준이 만마관 정비와 진영설치를 다시 건의하면서 만마관이 정비되고 남관진이 설치됐다. 여지도 ‘남고진사례’에 따르면 만마관은 남고진에서 동쪽(실제 남쪽에 가까움)으로 약 16km(40리) 떨어진 곳(남관진으로부터 5리)에 있었다. 남고진과 전라감영은 2리 정도 떨어져 있는 셈이다. 비교적 정확하게 거리가 표시돼 있다. 남원으로부터 슬치를 넘어 전주로 들어오는 협소한 길목에 자리한 천혜의 요새였다. 

만마관의 문루는 6칸이고 물고기 비늘모양 철제 장식이 달린 홍예문(아치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성곽을 포함한 총 길이가 약 230m이고 여장(성 위에 낮게 쌓은 담으로 이곳에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하거나 한다.)은 78좌이며, 3칸 규모의 수문장졸 수직방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돼있다. 1907년 경의 만마관 사진기록을 통해 어렵지 않게 복원할 수 있다고 본다.

만마관은 남원을 거쳐 임실, 그리고 완주 지역으로 들어오는 적을 일차적으로 방어하는 곳으로 남관진장(南關鎭將)이 이를 담당하였다. 만마관은 전라남도 구례군의 석주관(石柱關)과 함께 전라도를 지켰던 전략적 군사 요충지의 하나였다. 만마관은 이처럼 전략상 전주부를 방어하는 관방시설의 역할을 하다가 순종 원년(1907) 성벽을 철거하는 사업을 하면서 해체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철도와 도로를 건설하면서 파괴돼 관문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고종 8년(1871) 관찰사 이호준(李鎬俊)이 계문하여 부에서 남동쪽으로 35리, 남원가도를 바라보는 요지에 남관진(南關鎭)을 창설하고 남고산성 별장으로 하여금 그것을 겸관토록 했다. 6개월마다 교대해 머물러 살피게 했다. 고종 32년(1895)에 남고산성과 함께 폐지됐다. 지금 남고산에서는 구불구불 산정을 둘러싸고 있는 산성지 속에서 남장대의 초석 몇 개, 다 허물어진 석문 터, 밭 속의 진 터, 서문 안 남고진 사적비, 남문 안 별장의 기념비 등에서 옛날의 흔적을 겨우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완주·전주가 통합되면 상징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게 통합시의 관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북쪽의 호남제일문에 대응해 남쪽에는 상관의 만마관(萬馬關)을 복원하는 게 합당하리라 생각한다. 만마관은 이미 호남제일관(湖南第一關)으로 정평이 나있다. 호남제일성에 걸 맞는 호남제일관의 위용을 찾아주는 것이 옳다고 본다. 만마관은 원래 있던 위치에 원래 규모대로 복원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주?남원 국도를 지하화하고 성곽을 복원해야 할 것이다.

만마관 복원과 함께, 남관진과 부대시설 등을 복원하고, 남고산성과 연계해서 조선시대 국토방위 체계를 널리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아울러 조선시대 만마관 임무교대 사열의 재연, 말타기 경주, 조총과 활쏘기 체험 등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왕의 길’ 등 여러 가지의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며, 다양한 영상콘텐츠 제작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만마관에서 남고산성, 전주성까지 가도는 호국도시로서 위용을 갖출 것이다. 만마관의 복원에서 시작되는 역사문화 관광산업의 진흥을 기대해본다. 만마관의 복원이야말로 완주?전주 통합의 상징적 사건이며, 후백제 도읍지이자 조선왕조 창업기지로서 전주의 위상을 되찾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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