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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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에서 살다보니 도지사, 시장, 군수, 국회의원, 지방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들의 권한이 막대한 것을 실감하게 된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장들은 각종 사업의 인허가, 보조금 지급 권한 등을 활용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보게 된다. 정부에서는 공공기관의 보조금을 둘러싼 이익관계망, 먹이사슬을 파헤쳐서 부당한 특권구조를 혁파하려고 한다. 그러나 정부의 강력한 방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조금 지급을 무기로 주민을 옥조이고 지배하려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우리의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주권주의를 위반하는 것이다.

「보조금법」은 제4조에서 보조사업을 수행하려는 자의 예산 계상 신청 등을 규정하고, 제5조에서는 예산 계상 신청이 없는 보조사업의 경우에도 국가시책 수행상 부득이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필요한 보조금을 예산에 계상할 수 있다. 제40조는 거짓 신청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보조금이나 간접보조금을 교부받거나 지급받은 자 또는 그 사실을 알면서 보조금이나 간접보조금을 교부하거나 지급한 자 등을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조금 지급은 현금을 지원하기 때문에 처벌도 강력하다고 할 수 있다.  

「보조금법 시행령」은 제3조에서 ‘기획재정부장관이 국가의 주요시책 수행상 보조금의 교부가 불가피하다고 인정하는 사업인 경우’ 등을 예산 신청 없이 국가가 보조금을 예산에 계상할 수 있는 경우로 정하고 있다. 「전라북도 보조금조례」는 이를 받아 제6조에서 ‘도 시책사업 등 도에서 적극 권장하거나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예산 계상 신청 없이도 보조금을 예산에 계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시.군 조례 가운데 「전주시 보조금조례」는 제3조에서 ‘시장이 주요 시책 추진을 위해 지방보조금의 교부가 불가피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예산 계상 신청이 없는 경우에도 보조금을 예산에 계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완주군 보조금조례」도 ‘완주군수가 완주군의 주요시책 수행상 지방보조금의 교부가 불가피하다고 인정하는 사업인 경우’ 보조금을 예산에 계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짧은 지면에 보조금 지급 법규 체계를 살핀 것은 지금도 그 폐해가 크게 우려되기 때문이다. 특히 완주·전주 통합운동을 지켜보면서 느낀 점은 일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보조금 지급을 무기로 전횡을 부릴 수 있는 데 이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단이 시민단체에게는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모 자치단체 소속 공무원은 통합운동 단체 대표에게 통합운동에 나서지 말 것을 종용했다고 한다. 통합운동에 나설 경우 이 대표가 하고 있는 보조금 지원사업에 대해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또 다른 조합의 대표자도 통합운동에 동참하고 나서자 자치단체의 여러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자치단체는 통합운동에 분열을 일으킬 소지가 있음에도 모 단체에게 보조금을 지급했다고 한다. 

이 같은 현상이 잇따라 발생하는 것은 보조금 지급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것 같다. 보조금 지급은 엄격하게 법규로 제한하고 있다. 그만큼 기속력이 강한 것이다. 그러나 앞서 본 것처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주요시책 수행상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가장 문제가 된다. 무엇이 이 경우에 해당될 수 있을까를 판단하는 것은 엄격하게 제한하는 기속행위에 가까운 기속재량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자치단체장이라고 해서 무조건 지급할 수 있는 재량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보조금 지급의 한계가 있는 것이다.

보조금은 더 이상 선출직 공직자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데 악용될 수 없다. 자치단체장들이 주민의 공복이라는 생각을 잊지 않는다면 보조금 지급을 무기로 완주·전주 통합운동의 대세를 왜곡시킬 수 없는 것이다. 만약에 그런 일이 있다고 한다면 주민에게 주권이 있다고 하는 주민자치상 주민주권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공적 머슴인 자치단체장이 주권자인 주인에게 행패를 부리는 것과 다르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보조금법」 위반자 처벌이 엄중한 것은 이 같은 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2013년 청원시 승격을 추진하던 당시 청원군수가 시 승격 추진을 중단한 이유는 청주시와 통합을 반대하는 단체에게 보조금을 잘못 지급하고 이 문제가 사건화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조금 지급은 칼날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선출직 공직자들이 법 앞에 겸허하고 공인정신을 되새기기를 바랄 뿐이다.

/이춘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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