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학농민혁명 재조명 세미나

옥구지역 대접주 장경화 등
동학농민군 50명 활동 활약
군산진 등 중요장소 7곳 확인

군산에서도 동학농민혁명이 활발하게 일어났다는 사실이 밝혀져 지역사 연구에 한 획을 그으면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군산에서도 동학농민혁명이 활발하게 일어났다는 사실이 밝혀져 지역사 연구에 한 획을 그으면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군산지역과 큰 연관이 없다고 알려진 동학농민혁명의 활발한 활동 내용과 주요 거점지역이 새롭게 조명돼 지역사 연구에 한 획을 그을 것으로 보인다.

동학농민혁명은 지난 1894년(고종31년) 동학교도 전봉준이 중심이 돼 일으킨 농민혁명으로 동민농민운동, 동학농민전쟁 등으로 불린다.

이러한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군산지역의 경우 그동안 활발하게 언급된 적은 없었으며, 도내 타 지역에서만 일어난 것이라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군산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고, 주로 활동했던 거점지역까지 드러남으로 군산지역 동민농민혁명이 부각되고 있다.

군산은 옥구 대접주(접조직 총괄지도) 장경화와 지도자급 허진, 임피의 진관삼·김해룡, 군산진 접주(접의 우두머리) 김학배와 김준홍 등 50명이 동학농민군으로 활동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조선정부 기록에 의하면 군산진(수군기지)의 경우, 동학에 물들지 않은 자가 없다고 기록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다.

이 같은 사실은 25일 군산근대역사박물관과 동학농민기념재단 동학농민연구소가 실시한 ‘군산의 동학농민혁명 재조명’ 세미나에서 밝혀졌다.

이날 주제 발표에 나선 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은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지역이 ‘군산진’이라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군산진은 동학혁명 기간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한 곳으로, 조선정부는 동학농민군이 장악한 군산진을 회복하기 위해 최건수를 군산첨사로 임명했다.

군산첨사로 임명된 최건수는 군기와 아전을 점고하고, 수성군을 조직했으며, 성하영의 진압부대를 통해 군산진을 동학농민군으로부터 회복하고자 노력했다.

이 연구조사부장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임피·옥구를 포함한 군산지역 동학농민군의 활동과 성격을 통해 동학농민군의 활동이 대단했음이 이제야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어서 발표한 김중규 군산근대역사박물관장은 군산에서 활동한 동학농민군 중 기록이 확인된 50명의 이름과 발자취, 지역에 남아있는 동학혁명과 관련된 중요 사건 장소 7곳을 확인했다.

김 관장은 “여러 가지 문헌에 따르면 군산지역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50명”이라며 “참여자 중에는 옥구 대접주로 활동한 장경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장경화 대접주는 지난 1893년 보은집회에 참여했고, 농민군 2차 봉기 때 옥구지역 농민군을 이끌었다”며 “허진은 옥구 농민군 두령으로 전봉준 장군의 백산봉기에 참여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군산진 문규선은 당시 양반으로, 지역 자치기구 수장인 좌수의 신분이었는데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다”고 덧붙였다.

김 관장이 연구 조사한 군산지역 농민운동 참여자는 1894년 행정구역에 따라 옥구지역 장경화 대접주와 허진 두령 등 5명, 임피는 진관삼·김해룡 등 30명, 군산진은 좌수 문규선과 김학배 접주 등 15명이다.

군산 농민군이 활동한 주요 거점은 옥구 2곳, 임피 3곳, 군산진 2곳 등 총 7개소로 옥구지역은 옥구읍 상평리 읍내마을 옛 상평초와 대야면 지경리 금반마을로 추정했다.

임피지역은 이두황의 진압군에 나포 주민 14명이 포살된 나포면 원나포 공주산 인근, 김문화 접주가 활동한 금강변, 지난 1899년 동학 재기운동의 중심지였던 오성산 물탕골 인근이다. 

마지막으로 군산진은 지난 1894년 홍계훈 진압군이 상륙한 군산진성터(내항 수덕산)와 군산진에서 가장 활발한 동학군 활동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중동 경포천변 서래당산이다.

김 관장은 “이번 연구에서 확인된 참여자와 활동 장소는 이제야 군산지역 동학농민혁명 관련 연구가 시작되는 단계”라며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진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군산=김기현기자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