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처법 확대 적용 유예하라" 소리 거세

내년부터 5인이상 50인미만 확장
중소건설업 원자재-인건비 급등
수익성 약화 등 난관 법사위 무산
중처법 기소 기업 82% 중소기업
영세기업 맞는 법령 개정 필요해
중소건설사 조치 취한 곳 3.6%뿐
방대한 안전보건 의무-내용 모호
도내 18.8% 부실 지속 '한계기업'
중기중 중처법 적용 유예 연장을
노동계 적용 유예 연장 강력 반대
전국 50인미만 사업장 98% 이상
사업 축소-폐업 고려 16.5% 차지
민주당 중처법 유예 전면 반대
중기업계 현장의 목소리 들어야
정부여당 2년 연장 개정안 발의
유예-정책대비 동시에 필요

내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시행을 앞두고 중소건설사를 포함한 중소기업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새해가 바뀌면 1월 27일부터 상시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공사금액 50억원 미만)의 사업장까지 중대재해처벌법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중소건설사 등 중소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모호한 규정이 많고 시행될 경우 기업활동이 크게 제한될 것이라며 2년간 추가 유예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준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사실상의 무방비 상태로 전면 시행을 유예시켜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법 시행 이후 되레 안전사고는 증가했고, 향후 중대재해로 처벌받은 사업체의 시공능력평가 점수를 깎는 등의 조치도 업체로서는 큰 부담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재계ㆍ노동계, 여ㆍ야의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2년 유예 방안을 담은 개정안이 어떻게 처리될지 주목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시행에 대해 전북지역 중소건설업를 포함한 중소기업계의 입장을 조명해 본다.
/편집자주
 

▲ 건설경기 추락에 도산까지 걱정 첩첩산중

“자잿값과 인건비 인상으로 1년 넘게 회사가 어려움에 빠져 있는데 내년부터 중대재해법까지 적용한다니 도대체 어떡하라는 겁니까? 회사가 어려워 직원들은 퇴직을 걱정하고, 저는 회사의 존폐조차 장담하지 못하는 마당에 중대재해법에 대비할 준비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건설경기가 언제 개선될지 모르는 막막한 상황에서 도산까지 염려해야 할 처지에 처벌과 규제가 확대된다면 회사 문을 닫으라는 말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전주시내 소규모 A건설사 대표의 하소연이다.

전북지역 대부분의 중소건설사들의 입장은 이 회사 대표와 생각이 별반 다르지 않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 사고 예방에 소홀한 사업주에 대해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한 법안이다.

지난 2021년 법안 공포 이후 1년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해부터 상시근로자 50인 이상(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에 적용됐다. 내년부터는 상시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공사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026년까지 유예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지난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될 예정이었으나 무산된 상태다.

문제는 중소건설업계가 이 법의 전면시행을 앞두고 원자재 가격, 인건비 급등에 따른 수익성 악화, 금리인상 등으로 이중 삼중의 난관에 봉착해 있다는 점이다.

올해 상반기 건축 인ㆍ허가 면적은 전년 동기 대비 22.6% 감소했고, 착공면적은 38.5% 감소하는 등 건설경기 또한 급속하게 위축됐다. 연구기관에서도 내년도 건설경기 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어 건설업계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건설사를 포함한 중소기업계는 내년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전면 시행되면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처벌이 집중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이달 발표한 50인 미만 사업장 중처법 적용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검찰이 중처법과 관련해 기소한 기업 28곳 중 23곳인 82.1%가 300인 미만 중소기업이었다.

법원 판결을 받은 기업 10곳 중 9곳도 300인 미만 규모였으며, 이들 9곳 중 5곳은 50인 미만의 소규모 건설업체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은 모호한 규정이 너무 많고 외부의 단기 지원만으로 의무이행을 하는데 어렵기 때문에 최소 2~3년은 법 적용을 유예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또 안전을 위한 다양한 지원방안 모색과 함께 영세 기업 실정에 맞도록 법령을 개정할 필요성도 지적하고 있다.

전북지역의 B건설사 관계자는 “당장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중대재해처벌법 전면시행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 지 막막하다”며 “원자재값과 인건비 상승 등으로 안전관리자를 뽑을 형편도 못되고, 모든 건설사들의 여건이 추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대재해처벌법까지 시행된다면 우리처럼 중소규모의 건설사들은 어떻게 먹고 살라고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 “2~3년 더 필요해” vs “적용 유예 안돼”

중소건설사들의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실태를 보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하다.

최근 전문건설사 781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내년 법 전면시행을 앞두고 우려감을 자아내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을 위해 안전관리체계 구축, 인력ㆍ예산 편성 등의 조치를 취한 건설사는 3.6%에 그친 반면, 96.8%는 ‘별다른 조치 없이 종전상태 유지’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전문건설사의 중대재해처벌법 준비가 미흡한 이유로는 ‘방대한 안전보건 의무와 내용의 모호함 67.2%, ‘비용부담 24.4%, ‘전문인력 부족 8.4%로 나타났다.

이처럼 영세한 전문건설사는 자본력과 인력의 한계 등에 부딪혀 무엇을, 어떻게 대응할지 막막한 처지라는 점이 여실히 들어났다.

전북지역 건설업체 18.8% 정도는 3년 이상 부실이 지속된 한계기업이라는 결과도 나와 있다. 한계기업이란 영업 활동으로 돈을 벌었지만 이자비용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3년 연속 계속되는 기업을 뜻한다.

전북의 한계기업은 증가세를 거듭하고 있으며 내년 이후 건설업계 부실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이는 고금리와 원자잿값 상승세에 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전북의 건설사 5곳 중 1곳 정도가 3년째 번 돈으로 빌린 돈의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영세 건설사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전북지역의 한계기업은 지난 2020년 12.2%에서 2021년 15.7%로 늘어났고, 지난해에는 18.8%를 기록해 3년째 늘어났다. 중소건설사들의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한계기업이 해마다 3%씩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전면시행에 대한 우려는 또 있다.

지난 15일 ‘50인 미만 중소기업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실태조사’를 발표한 대한상의는 50인 미만 회원업체 641개를 대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조치 여부를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76.4%는 종전 상태를 유지(39.6%)하거나 조치 사항을 검토 중(36.8%)이라고 답했다고 밝혔다.

중소기업들이 중대재해처벌법 대처가 어려운 이유로는 안전관련 법 준수사항 방대성이 53.7%로 최다였다. 이어 △안전관리 인력 확보 51.8% △과도한 비용부담 발생 42.4% △안전지침 위반 등 근로자 안전인식 관리 41.7% 순으로 답했다.

지난 20일 중소기업중앙회 등 18개 중소기업과 건설업 단체 등은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중대재해처벌법 50인 미만 적용 유예 연장 법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중소기업단체협의회도 23일 논평을 내고 무리하게 법을 적용하기보다 내실 있는 지원대책을 마련하고 실질적으로 중대재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준비기간을 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27일에는 중소기업중앙회가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 초청 중소기업인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대표가 구속되거나 징역형을 받게 되면 사고를 수습할 사람이 없어 결국 문을 닫아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반면 노동계에서는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처법 적용 유예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최근 기자회견을 연 민주노총과 생명안전행동 등 노동계는 중대재해 예방대책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노동부를 강력히 규탄한다적용 유예 연장을 반대하고 개정안 폐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 ‘중처법’ 전면시행 한계...‘유예’ 실타래 풀어야

전국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수는 83만여 개로 전체 기업의 98%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이 기업들을 대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유예되지 않을 경우 대응 계획에 대한 설문에는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 사업 축소나 폐업 고려에 대한 응답도 16.5%를 차지했다.

최근 들어 심화하는 여야 갈등은 중대재해처벌법 전면시행 적용 유예 여부에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최근까지 여야는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과 일부 검사들의 탄핵소추안을 두고 샅바싸움을 하고 있다. 민주당은 30일과 다음 달 1일 본회의에서 탄핵안을 강행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탄핵 등 정치적인 목적으로 본회의를 소집해서는 안 된다며 맞서고 있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 시행일이 불과 두 달밖에 남지 않은 만큼 정부는 여론 되돌리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민주당은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를 전면 반대하고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다만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 등이 전제된다면 고민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야당이 논의의 장은 열어두겠다면서도 정부의 공식 사과와 안전ㆍ지원계획 등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공’은 다시 정부로 넘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중소기업계는 현실적인 여건상 중대재해처벌법 유예가 불가피하다고 거듭해서 강조하고 있다.

중소기업계는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중대재해처벌법 전면시행을 놓고 책임 공방 등 소모적 논쟁을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소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정부와 국회가 듣고 유예를 위한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부 여당에서는 중진의원 등이 나서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을 2026년 1월 27일로 2년 늦추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정부는 2년 유예에 따른 로드맵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따가운 눈총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소기업의 중대재해처벌법 준비를 위한 2년 로드맵을 제시하며 유예를 설득하는 것이 마땅하고, 유예와 정책 대비가 동시에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내년 1월 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법 유예기간 연장 여부를 놓고 재계와 노동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중소건설사는 유예기간 연장을 호소하는 반면, 노동계는 계획대로 내년부터 법이 전면 시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중처법만으로는 유예기간 연장 여부를 떠나 한계가 분명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건설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미비한 제도, 근로자의 안전의식 수준 등 장기간에 걸쳐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신우기자 l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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