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문 전주남부교회 목사
/강태문 전주남부교회 목사

한 해가 저물며 연말이 되면 늘 듣게 되는 표현이 바로 다사다난(多事多難)이다. 어느 해든 다사다난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뱃속에서 나온 자식도 아롱이다롱이라고 다 다른데 수천만 명이 살아가는 한 나라, 수십억 인구가 살아가는 온 세계를 떠올려 보면 어느 한 해건 일없이 지날 수는 없다. 모두가 생각이 다르고 능력이 다르며 재능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너무 다르기 때문에 문제되는 것들도 많다.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사회공동체이다. 모두가 직접 혹은 간접적인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이 있고 그렇게 서로 다른 직업을 통한 활동으로 모든 사람이 자신이 부족한 것을 채울 수가 있다. 모두가 정치인이 될 수 없고 모두가 사업가가 될 수 없으며 모두가 농업인이 될 수는 없다. 모두가 서로 다른 업을 가지는 것으로 공동체에 필요를 공급해주는 것이다. 필자의 장인어른이 한동안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다가 얼마 전 고인이 되셨다.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간병인이 기저귀를 갈아드리는 등의 어려운 일을 하시는 것을 보았다. 물론 급여를 받고 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나 자신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을 보면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사람은 이렇게 서로에게 타인과 다른 것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서로 다른 것으로 인해서 엄청난 고통을 만들거나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국적이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사상이 다르고 목적이 다른 것으로 크게는 전쟁이 나고 작게는 개인 간의 다툼이 만들어진다. 서로 다른 것이 조화를 이루면 좋은 하모니를 만들 수 있는데 조화가 깨지면 평화가 깨지게 된다. 오케스트라의 악기는 모두가 서로 다른 소리를 낸다. 그런데 서로 다른 소리가 조화를 이루면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 즐겁게 한다. 한 사람의 독창보다 서로 다른 음을 통해 화음을 만들어 합창을 하면 더 아름다운 소리를 만든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소리를 고집하지 말고 타인의 소리에 자신의 소리를 맞추어가야 한다. 이러한 화음을 사회적 소통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회공동체가 자신만을 고집하지 말고 자신을 공동체에 맞추면 소통이 이루어지고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만든다. 그런데 이러한 좋은 것을 두고도 자기중심의 이기적인 생각이 부조화를 만들어 평화를 깨뜨린다.

이제 지난 한 해를 마치고 새해를 맞이했지만 참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교수들이 2023년 을 사자성어로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다'는 뜻의 '견리망의'(見利忘義)로 꼽았다. 교수신문은 지난해 전국의 대학교수 131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견리망의'가 응답자 30.1%(396표)의 지지를 얻어 가장 많이 꼽혔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서로가 소득 없는 소모적인 전쟁을 하고 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 특별 군사작전 개시 명령을 선언한 이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발발한 전쟁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돈바스 지역의 주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전쟁을 개시하였다. 2024년 임기가 만료되는 푸틴이 종신집권을 위한 치적을 쌓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병합하여 러시아의 지정학적 입지를 안정시킬 목적으로 개시한 전쟁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고 나토의 동진과 그에 대한 러시아의 반발이 충돌한 것을 원인으로 볼 수 있다. 한 사람의 ‘견리망의’로 인해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전쟁으로 고통과 아픔을 생산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역시 극히 한정된 사람들의 호전적인 생각이 힘없는 수많은 사람의 살상과 파괴를 통해 고통의 역사를 만들고 있다.

지난해 IT산업의 화두는 ‘ChatGPT’였다. 가히 IT산업의 혁명적 발전이라고 할만큼 끝없이 진화를 이루는 인공지능(AI)의 발달이다. 인공지능(人工智能) 또는 AI(artificial intelligence)는 인간의 학습능력, 추론능력, 지각능력을 인공적으로 구현시키는 컴퓨터과학의 한 분야이다. 이제 AI는 딥러닝(deep learning)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하여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을 수 있는 단계까지 도달하고 있어 어떻게까지 발전할지 그리고 그러한 발전이 유토피아를 만들지 디스토피아를 만들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인간의 욕망과 함께 재화를 향한 욕구가 ‘견리망의’에 이르게 하는 것 같다.

그런데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국내 정치인들의 모습이었다. 정치인들이란 그 생리가 ‘견리망의’의 가장 뚜렷한 성격을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멀쩡한 사람도 정치만 하면 그렇게 변하기 때문이다. 다수당의 이점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야당이나 ‘윤심’만을 바라보고 위기의식을 가지지 못하는 여당이나 정치적 소통을 이루지 못하고 불통의 국정 운영을 하는 정부나 모두가 ‘견리망의’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불법을 하고도 정치탄압이라고 외치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언제나 보지 않는 세상이 될지 모르겠다. 항상 새해가 되면 올해는 새로운 변화를 볼 수 있는 해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시작하지만 세모(歲暮)가 되면 여전히 다사다난할 뿐이다.

/강태문 전주남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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