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철 전북농협 노조위원장
/박병철 전북농협 노조위원장

요즘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을 자주 보곤 한다. “양규 장군 전사할 때 TV 앞에 간이 제사상을 차려 놓을 거다.” 모 방송사 사극 고려 거란정쟁 속 고려 서북면 도순검사 양규에 푹 빠진 시청자가 최근 SNS에 올린 글이라 한다. 포로로 끌려간 백성을 구하기 위해 ‘사지’를 찾아간 양규가 거란 본군이 쏜 화살에 맞아 전사한 장면은 이날 방송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나라를 빼앗긴 백성들의 처절한 삶은 드라마 속에서 잘 묘사된다. 거란이 전쟁을 일으키는 목적이 약탈이라고 하였듯 거란군은 먹거리와 재물을 닥치는 듯 빼앗았고 여인들을 유린하였으며 어린 아이들까지 노예로 부렸다. 거란군은 남쪽으로 더 이상 전쟁을 이어가지 못 하고 퇴각하게 되자 3만명 이상의 백성들을 노예로 끌고 가려 했다. 그런 상황에서 양규 장군이 구한 백성들이 3만을 넘는다 하니 가히 존경스럽지 아니할 수 없다. 

 고려-거란 전쟁은 993년, 1010년, 1018년에 고려와 거란의 요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던 고려와 요나라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교류가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고려와 거란의 3차에 걸친 전쟁은 한국 역사에 큰 충격과 영향을 끼친 사건이다. 결국 요나라는 고려 침략에 실패하여 요동에서의 지배권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고려-송나라-요나라 3국의 대등한 세력 균형이 형성되었다. 

 한민족에게 이처럼 뼈아픈 과거는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가장 가까운 현대사에서는 일본의 조선 침략과 한일합방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만주벌판을 호령하던 선조들의 기개는 어디로 갔는가. 드넓은 만주 땅이 고구려 때 우리의 영토이었듯 계속 우리 땅이었다면 어땠을까. 남북한이 갈라지지 않고 하나의 영토를 가진 나라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허튼 상상을 해 보기도 한다. 

 드라마를 보면서 욱할 때도 있고 가슴 뭉클할 때도 있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주권을 빼앗기고 백성은 죽음을 면치 못하든지 살아 있다 해도 노예만도 못한 삶을 살게 된다. 국가 간 이해관계에 의한 전쟁 발발 시 현대 사회에서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끝이 보이질 않고 이어지고 있고,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도 더욱 고조되고 있는 양상이다. 그 가운데 죽어나는 것은 아무 죄도 없는 어린 아이들을 비롯한 국민들이다. 우리 한반도의 상황은 또 어떠한가. 북한은 남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모든 대화 채널과 기구 등을 폐쇄해 버렸다. 북한은 과연 우리의 적이 맞는 것인가. 남북 관계가 극히 악화되면서 한반도에 남북간 동포 내지는 동일 민족이라는 의미마저 내던져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심히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고려 거란 전쟁 극중에서 현종은 거란족에 쫓겨 남쪽으로 피난을 가면서도 자신이 능력이 없어 백성들이 핍박당하는 현실에 한없는 자책을 하며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임을 통감한다. 그러면서 다시는 그런 고난을 백성에게 지우지 않겠다며 분골쇄신 다짐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군주의 양심이 보이기도 했다. 역사에서 실제로 현종이 추존받은 호칭은 원문대왕으로 황제가 아닌 대왕이었다. 현실의 대한민국 사회도 좀 그랬으면 좋겠다. 국민과 유권자가 한없이 소중한 존재임을 아는 대통령, 개인의 안위보다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면서 정치가 권력이 아닌 봉사임을 자각하고, 진솔하고 겸허한 자세로 국민을 섬길 줄 아는 정치인, 국가 간의 이해관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인류 공동의 번영이라는 가치를 아는 국가 원수들이 새해에는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박병철 전북농협 노조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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