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가 치러진 1997년 12월18일 저녁 10시쯤. 

국회 정문 바로 앞 건물에 있던 '새정치국민회의' 3층 기자실에 박지원 당시 특보가 까만 비닐봉투 두 개를 들고 들어왔다. 비닐봉투 안에는 캔 맥주와 간단한 안주거리들이 있었다. 박 특보는 TV로 개표 상황을 보고 있던 30여명의 당 출입기자들에게 "고생한다"면서 캔 맥주를 꺼내들었다. 

당시만 해도 야당을 출입하는 언론사나 출입기자 수가 많지 않아 대부분 낯이 익었다. 엎치락뒤치락, 박빙의 개표 속에 박 특보가 등장하자 기자실은 DJ의 승리를 예상했다. "축하합니다"라는 당직자들의 인사에 박 특보는 "아직 개표 안 끝났어"라고 말했지만 이미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당직자들의 얼굴에도 이제 세상이 바뀌겠구나하는 기대감이 묻어났다.   

그 날 한국 정치는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김대중-이회창-이인제라는 3자 대결 구도에서 아슬아슬, 근소한 차로 DJ가 당선된 것. '준비된 대통령'을 내세웠던 DJ가 드디어 대통령이 됐다. 여기엔 보이지 않는 이들, 마음 속으로 DJ를 지지해 왔던 이들의 힘이 컸다. 특히 '영원한 라이벌' YS의 암묵적 지원이 힘이 됐다는 평론가의 분석도 많다. 

4수 만에 정권을 잡은 DJ 앞에는 IMF가 있었고 남북 문제가 있었다. 한가하게 권력에 취할 시간이 없었다. 당시 유종근 대통령 경제특보와 고 강봉균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은 '워커홀릭'인 DJ의 체력을 보고 놀랐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말대로 국민 정서를 하나로 모아 IMF를 극복했고, 남북 관계도 빠르게 진전시켰다.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에 경북 울진 출신 김중권을 임명하면서 남북관계는 물론 지역감정 해소 분위기를 만드는 데도 크게 힘을 쏟았다. 

물론 모두가 DJ를 '칭송'하는 건 아니다. 대선 불출마 약속을 어겼다거나 정치자금 논란 등 몇몇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비판적 시각을 가진 이들도 DJ 정부의 공과는 객관적으로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잘 한 부분은 후대가 이어받고, 잘못된 부분은 경계하고 개선하면 된다. 이를 위해 역사가 존재하는 것이다. 

대통령 당선 후 DJ는 '용서와 화해'의 길을 걸었다. 사형 직전까지 갔던 DJ가 용서를 택한 건, 비단 카톨릭 신자여서가 아니라 일평생 살아온 불굴과 역경의 인생관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탄생 100주년인 지난 1월6일. 

이후 사회 각계각층에서 관련된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DJ의 고난과 역경사를 담담하게 그려낸 다큐멘터리 '길 위에 김대중'이다. '길 위의 김대중'이 아니라 왜 '길 위에 김대중'인가? 아마도 '(언제나) 길 위에 (있는) 김대중'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는가. 

새정치국민회의의 후신인 더불어민주당은 노무현-문재인 시대를 거쳐 지금 이재명 체제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민주당과 호남 역사의 핵심은 '길 위에 있는 김대중'일 것이다. 그럼에도 기대에 못 미치는 관객 수로 인해 자칫 상영관에서 내려와 조기 종영될 지도 모른다고 하니, 매우 아쉬운 일이다. DJ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젊은 층들이 우리 정치사를 조금이라도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다. 모쪼록 상영관에 오래 머물길 기대한다.

/김일현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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