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의외로 잘 모르는 인물이 사카모토 료마다. "그 사람이 누구냐?"고 되묻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일본인 사이에선 매년 인기투표 1~2위를 차지한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토요토미 히데요시 등 일본전국시대 인물들만큼 유명하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해서 화제가 된 적도 있다.  

그는 왜 국민적 인기를 끄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하급무사 출신임에도 불구,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인물이어서다. 그것도 누가 시킨 것이 아니고, 본인이 스스로 추진해 나간 것이다. 

'다이묘-상급무사-하급무사-농민'의 신분제도가 철저했던 일본에서 하급무사의 위상은 매우 낮았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선 영주의 허가도 필요했다. 한 지역에 갇혀 살 수밖에 없으니 신분제도는 더욱 고착화됐고 '칼'에 의한 지배는 매우 엄격했을 것이다.    

그런 세계에서 사카모토 료마(1836~1867)는, 허가증 없이 타 지역으로 '탈번'해 요즘 말로 불법체류자가 됐고 불과 31세의 나이로 암살당했다. 그런데 20대 들어 10년 동안, 그는 쫓기는 신세였음에도 일본의 신체제 건설의 핵심 기반을 만들었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을 전후해 근대화에 성공했고 상대적으로 조선은 쇄국에 들어갔다. 결국 우리 선조들은 일본침략으로 인해 엄청난 고난과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사카모토 료마의 최대 업적 두 가지는 '삿쵸동맹', '대정봉환'으로 꼽힌다. 삿쵸동맹은 일본의 사쓰마, 초슈라는 두 라이벌 지역을 하나로 엮은 것이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우리의 고질적 영호남 감정과 마찬가지로 당시 이 두 지역도 매우 불편한 관계였다. 

하지만 개항, 개국을 요구하는 미국과 유럽 세력에 맞서기 위해선 두 지역의 연대가 필요했고 이를 실현시킨 이가 '일개' 하급무사 출신인 사카모토 료마였다. 

대정봉환은 일본 근대화를 위해 도쿠가와 막부의 권력을 조정에 돌려주는 것이었다. 이 역시 실현시키면서 일본은 새로운 체제가 형성됐다. 모두 사카모토 료마의 공로다.   

물론 일각에선 너무 미화됐다거나 과대평가됐다는 시각도 있다. NHK 대하드라마나 소설에서 '인위적으로' 각색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그가 삿쵸동맹과 대정봉환 그리고 해군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지난 2월 설연휴에 사카모토 료마의 동상이 있는 시코쿠 고치현, 가쓰라하마에 다녀왔다. 시코쿠는 일본 4개의 큰 섬 가운데 가장 작다. 요즘도 타 지역에 비하면 교통이 불편한 곳으로 꼽힌다. 

그 시코쿠의 고치라는 지역은 태평양과 맞닿아있고 료마는 그 작은 곳에서 태어났다. 현재 그의 동상은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다. 

친일, 반일, 극일 심지어 죽창론에 이르기까지 일본에 대한 우리 감정은 매우 복잡하다. 그러나 한일 감정을 떠나 사카모토 료마라는 단 한 명의 인물에 집중해 본다면 그는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 

시대를 뛰어넘는 사상, 난관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함 그리고 조국의 근대화가 필요하다는 신념에 그는 모든 걸 바쳤고 일본의 탄탄한 기틀을 구축해냈다. 

전북에도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내다보며, '특정한' 이념에서 벗어나 오로지 전북 발전에 전념하겠다는 신념을 가진 이가 필요하다. 22대 총선거에서 그런 의지를 가진 인물이 나올 지 궁금하다.

/김일현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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