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명룡지방부
 대학 수능일인 10일 오전 11시.

 아들 딸, 혹은 손자 손녀가 수험생 일듯 한 삶의 흔적이 짙게 밴 얼굴들이 모여 들었다. 대학수능 시험장인 어느 고등학교 교문 앞이 아니라 평생교육학교인 군산시 삼학동 평화중고등학교 현관 앞이었다. 현관에는 ‘평화중고등학교 폐교반대’라는 현수막이 늦가을 잎새처럼 나부끼고 있었다.

 아저씨, 아주머니 학생들과 그 나이 또래를 훨씬 넘긴 어르신들의 굳은 얼굴에는 고단한 삶의 흔적들이 묻어 나왔다.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 중년을 넘어선 이들이 어느새 50명을 훌쩍 넘어섰다. 그들에게 있어서 오늘은 인생에서 손꼽을만한 중요한 날이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평생 묻고 살았던 배우지 못한 한을 풀지 못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있는 수능 시험장 학교 교문에서 기도하고 응원해야 하는 게 부모의 도리인줄  그들이 모를까. 하지만 이들에게 자식들 시험장 보다 오늘 모이는 이 현장이 더욱 절박하다.

 어렵게 아이들 키우며 살아가느라, 아니 가난했던 부모를 돕느라 중도에 배움의 길을 포기했던 중학생의 길. 이 3년의 과정을 넘어서면 곧이어 고등하교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졸업하고 나면 학력이 인정되기 때문에 꿈에도 그리던 대학생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만학도의 길. 그 길이 중간에서 끊어지게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터에서 아름답고 꿈에 부풀어 있어야 할 청소년기에 교복 입은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살아왔던 기구한 희생양이다.~”로 시작되는 성명서를 읽는 군산 평화중고등학교 살리기 협의회(공동대표 함영호, 장천식, 석병오)의 목소리가 가을바람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절박한 것은 배움의 꿈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아들, 딸에게 못 배운 부모로써 가슴 한쪽이 허물어지는 일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아직도 고단한 삶이지만, 창피하기도 했지만 나무껍질처럼 거칠어진 손으로 책과 펜을 잡은 이유가 있다. “자식들 보기 부끄러운 부모가 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오늘은 자식들의 시험장 보다 자신들의 폐교 위기에 놓인 학교를 구하는 일이 급했을 터이다.

 “우리들의 배움의 문제는 국민으로써 당연한 권리이며 이 사회가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이다.~”성명서의 톤이 낙엽처럼 흔들리고 있다. 깊어가는 이 가을에 그들이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배우고 싶다는 것!”

 오늘 낙엽처럼 늙어가는 이들이 모인 이유를 평화중고등학교를 운영하는 YWCA, 교육청, 군산시 등 관계기관이 모를 리가 없다. 과정이 어떻든 나이 들어 거북등처럼 갈라진 손으로 배우고 익히던 그들의 절망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교육의 기회는 공정하고 공평해야 하기 때문이다.

 손자들이 배우고 지나간 자리를 늘그막에 지켜내면서도 ‘배우고 싶은 열망을 담아주던 평화중고등학교’가 있었기에 가슴 뿌듯했던 그들이기에 가을 햇빛처럼 만학의 오늘이 더욱 따사로운지도 모른다. 그 풍요와 결실이 눈앞인데도 가을 학기를 마무리 하는 교실은 푸른 멍으로 얼룩지고 있다.

 올해 신입생 모집을 하지 않으면 평화중고등하교는 자동 폐교의 길을 걷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이들 중학교 과정인 120명의 늙은 학생들은 더 이상 진학할 학교가 없다. 이유도 많을 것이고, 각자의 견해가 다른 부분도 있으리라. 그런데 오늘 이 가을 햇살 아래 모두 넉넉해질 수는 없을까? 관계기관이란 이럴 때 필요한 게 아닌지 입을 모아본다.

“지금도 살아가는 게 어렵지만 배움의 열정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습니다.” 이들의 목소리가 떨리면서도 맑게 퍼져 나가는 이유를 ‘배움에 대한 열정’이라고 이름붙이고 싶다. 그래서 이 가을엔 평화중고등학교가 그대로 존속된다는 결실의 소식을 듣고 싶다./군산=채명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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